20231026 QT : 징징 말고 말씀으로 기도하기
민수기 27:1-11
슬로브핫의 딸들이 돌아가신 아버지 몫의 기업을 요구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들에게만 기업을 물려주는데
아들이 없다고 기업을 못 받으면 아버지의 이름은 족보에서 삭제된다.
반역으로 죽은 것도 아닌데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다 아시지만 이렇게 우리가 요구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하신다.
나는 이걸 하나님이 알아서 배려해 주시기를 바란다.
"너희는 딸들이라 기업을 못 받아,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따로 챙겨놓을게" 하고 먼저 말해주시기를 바란다.
안 그럴 때도 있다는 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이나 벌을 내리는 기능만(?) 하는 신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가 그분 안에서 그분이 내 안에서 함께 호흡하고 대화하고 상호작용하길 원하신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기분을 살피며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는 데 있어서 생각을 나누고
내가 성장하는 만큼에 맞춰 대화하기를 바라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잘못하면 벌주고 잘하면 상주는 두려운 분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내 생각을 뜯어고치거나 혼을 내는 게 아니고 기다려주셨다. 어떤 하나님인지 알도록.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징징거릴 때도(기도한 게 아니라 징징거리고 삐치고 투덜거렸다)
단번에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지 않으셨다. 나는 너무 그런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바랐다.
adhd로 무언가를 진득이 참지 못하는 나에게 계속해서 기다리게 하셨다.
그 사이를 못 기다려서 삐쳐서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애가 제멋대로 오해해서 집을 나가버려도 부모는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가치가 있다.
십자가의 구속사적 가치관은 전지전능하게 나타나셔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못 알았다간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이런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어 나를 지금까지 끌고 오셨다.
하나님이 알아서 배려 안 해주실 때는 이유가 있는 거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로 그녀들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고 응답이라는 기쁨까지 맛볼 수 있었다.
경험해야지만 알 수 있을 때, 또 나 자신과 사람들 앞에서 신앙고백이 필요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이제는 삐져서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고
"왜 이건 안 해주세요?" 이 딸들처럼 말씀을 근거로 따지(?)든 요구하든 기도로 간구해야겠다.
모세가 이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었다고 한다.
모세처럼 오늘 내가 대신 간구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 되야겠다.
엄마, 아빠 위해 기도하고 안부전화 드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