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
요한복음 20:19-3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3번이나 말씀하신다.
제자들에게 평강이 없음을 아시는 거다. 제자들은 왜 평강이 없을까? 내가 따르던 지도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처참하게 사형당했다. 그분을 따라다니던 나까지 잡아다 똑같이 죽일까 봐 얼마나 두려울까. 나 같아도 문을 걸어 닫고 두문불출했을 거다.
예수님이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으라고 보내셨다.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하고 아무 죄 없이도 죽는 모습을 보이라고. 근데 그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보내신다는 거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라는 거다. 나도 십자가를 지라는 거다! 이 땅에서 지고 싶지 않은 십자가, 죽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 감당하고 싶지 않은 상황, 그것들에 순종하라는 거다. 생명을 위해서..
그러나 너희가 그렇게 하기 싫은, 힘든 마음까지도 예수님은 아신다. 그래서 지금 문 닫고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왜 이러고 있냐고 호통치지 않으신다. 비난하지 않으신다. 그저 평강이 있기만을 바라실 뿐이다. 하나님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시며, 그 말을 듣고 또 힘들어할 것을 아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에겐 진정한 평강이 없다는 것이다. 성령 받기를 사모해야겠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신내림 같은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엇을 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진정한 회개로 구속사의 가치관을 깨닫게 되면 성령이 임했다고 생각해도 될 거 같다. 그런데 성령님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임해 계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분의 임재를 내가 느끼게 되는 것이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도마의 의심은 참 위안이 된다. 나 같은 사람을 대표해서 도마가 의심하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이런 사건이 있는 거다. 만져보고 나서야 비로소 도마는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근데 만졌는데도 의심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의심하는 자까지도 만져보게 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이시다. 성령을 받지 못한 내가 안타까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이 내게 이루어질 줄을 믿는다. 성령을 받아 깊은 회개가 이루어지고 구속사에 대한 깨달음과 변화가 내게 있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무엇이든 더디 걸리는 나이지만 결국엔 주님이 이끄시는 길로 갈 것을 믿는다.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평강을 갖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