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출제자의 의도는 모르는 시험공부
20240404
욥기 23:1-17
묵상 본문이 다시 욥기가 됐다.
22장까지 친구들의 공감 없는 정답과 훈계만 잔뜩 들은 욥이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리고 내가 맨날 하던 고민을 욥이 이야기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게 하시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해한다. 물론 욥은 깊은 묵상을 하면서 이 고민을 하는데 나는 깊이 묵상이 안돼요-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왜 깊은 묵상을 못할까?
무엇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묵상질문에 대한 답이 그냥 띡 나온다. 지금도 왜 깊은 묵상이 안될까 라는 질문을 깊이 묵상 못하고 '뭘 묵상해야 되는지 몰라서'라고 띡 답해 버린다.
그럼 왜 뭘 묵상해야 되는지 모를까?
시험공부할 때랑 똑같다. 뭐가 중요한 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통째로 달달 외워버린다. 중학생땐 통째로 외우는 게 통했는데 고등학생땐 공부할 양도 많을뿐더러 점점 더 벼락치기를 하게 되니 다 외울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외우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의 사상을 달달 외우면 (점점 달달 외우지도 못했지만) 단순히 'OO이란 사람이 주장한 사상의 특징은?' 하고 묻는 게 아니었다. '이런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사상은?' 그러면서 내가 처음 보는 어떤 논설문이나 주장, 대화가 나오는데 그 속에 숨은 사상을 파악해야 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니 시험을 잘 볼리 없다. 아, 내신은 그럭저럭 나왔다. 모의고사만 보면 내 공부법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다. 하지만 뭘 고쳐야 하는지 몰랐기에 그렇게 나는 수능까지 치렀다.
학생 때 공부하던 방법처럼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채 주절주절 거리는 나의 묵상을 하나님이 들으신다(6절)고 하신다. 혼자 말하면서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시나 보다.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그런 과외를 해본 적은 없다) 이건 이래서 이렇다고 말해주질 않으시니,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답답해 두리번거리는 그 궤적마저도 그가 알고 계시고, 그것이 나를 단련시키시는 중이라 하신다.
말씀이 뭐가 뭔지 모르겠고 묵상도 뭔지 모르면서 떠들어 대지만, 이 모든 시간이 내가 단련되는 시간이란다. 그리고 마침내는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란다. 그는 마음에 하고자 하시면 반드시 행하신다고 하니 내게 작정하신 것을 분명히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다. 무서워서 떠는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함의 두려움이다. 어둠이나 방해세력 때문에 두려울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를 다 아시는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엄마가 내 모든 걸 꿰뚫고 있으면 무섭지 않은가.
뭘 묵상해야 될지 모르면서도 계속 이렇게 묵상일지를 적어보자. 더듬더듬 코끼리의 발을 만지다 보면 몸통도 만지게 될 거고 그렇게 더듬다 보면 코까지 만지게 되어, 아 코끼리구나, 할 날도 올 것이다. 내 사는 날동안 코끼리인걸 모른다 해도 그 시간 동안 나는 인내를 배우고 그동안 내가 만진 것만큼이라도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다.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주님을 믿고 나는 그저 그분을 경외하는 두려움으로 말씀을 묵상하면 된다. 그러니까, 하루도 빠지지 말고 큐티하기, 깊이는 못해도 읽어라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