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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Apr 08. 2024

QT  누구의 생애도 비웃지 않기를

20240408

욥기 27:1-23


본문을 읽어도 깨닫는 게 없어 해설을 읽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구원의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으면 내 믿음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나는 내 믿음으로 어떤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까? 그걸 생각하며 본문을 다시 읽으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대표(?) 인물을 뽑으라면 부모님이다. 

어릴 적 나를 힘들게 해 놓고, 지금 와서 아니 예전부터 나에게 [건강한 딸, 건강한 엄마(내 자식들에게), 건강한 후손(할머니와 고모에게)]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소그룹모임에 이런 유형의 부모님이 있다고 해도 그분이 엄청 판단되고 정죄되는 건 아니다. 그분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난 그냥 나를 이해 못 하고 나한테 머라고 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나 보다. 다른 사람한텐 큰 관심 없는 거 같다! 이런 글을 쓰면 나를 어떻게 볼까 또 의식한다. 그저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오로지 '나'라는 사람만 관심 있다. '나'를 오해하면 너무 슬프고, '내'가 잘하는 게 없어서 너무 우울했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해서 너무 원망됐다. 내가, 내가. 온통 '나'에게 집중.


내 마음이 부모님의 생애를 비웃고 있다. 그렇게 살면서 왜 하나님도 안 붙드냐는 비난의 마음이 든다. 이것은 그분들의 영혼에 대해 아파하고 진정으로 구원받으시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다. 제대로 좀 야무지게 (꼭 부자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잘' 사셔서 이제라도 상처 많은 자녀들 더 힘들게 안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른다운 어른, 성숙한 어른, 개념 있는 어른, 배려있는 어른.. 이렇게 적고 보니 똑같은 거 같다.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도. 나는 "부모가 어른이고 부모니까 나를 품어주세요" 부모님은 내게 "우리가 잘못은 했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네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살아야지"한다. 근데 자꾸 우리가 서로 똑같은 게 아니라 그분들이 성숙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속사를 안다면, 모든 일에 우연은 없기에 모든 가정환경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엄마아빠는 내가 예수님 만나도록 그런 역할을 하신 것이다. 그분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하나님을 모르면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다. 성숙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알아도 방황하는데 오죽하겠나.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결론은 부모님이 계속 저렇게 사시면 내가 힘들고 피해받을 뻔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말씀붙들고 깨닫고 싶은 것도 결국 나중에 부모님한테 힘들고 싶지 않아서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이렇게 부모님은 내게 하나님을 붙들게 하는 최고의 역할을 하고 계시다. 내가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변하지 않는 부모님의 수고는 계속될 것이다... 이유는 불순해도 말씀을 붙드는 것은 영원한 생명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이렇게라도 나를 데려가신다. 부모님은 물론 생애도 비웃싶지 않다. 이런 얄팍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거냐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진실되게 오직 하나님만 추구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싶다. 머리로만 아는 하나님을 가슴으로 알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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