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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Jul 08. 2024

폭망한 히피펌이 좋다

ADHD+INFP+아들둘맘 정신세계드로잉




이잉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이구야"

날 보자마자 육성으로 놀라시는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머리를 볶은 이후로 자꾸 죄송하게 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자꾸 아니라고 하시는데 뭐가 아닌 걸까요.

서로 민망한 웃음이 삐져나와 서둘러 헤어진다.










 

2년 전 이선빈의 사진을 들고 가서 히피펌을 요구했던 동네 단골 미용실이 문을 닫았다. 삼십 대를 찬란하게 마무리하고자 과감히 시도한, 일종의 '마흔 싫어 발악 머리'였다. 전지적 1인칭 시점으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선빈 저리 가라 눈이 부셔 거울을 볼 때마다 눈이 멀었고 난 시력을 잃은 대신 머리를 얻었다. 한데 그 후로 미용실 원장님이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몰라보게 살이 쭉쭉 빠지셨다. 결혼 관련해 미용실 문을 닫고 다른 지역으로 가신다고 했다. 즉, 연예인 사진을 들고 똑같이 해달라는 진상손님 때문에 문을 닫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난 그렇게 알고 있다...


죽을 때까지 원장님한테 머리 할 거라는 내 팬심이 부담스러웠을까. 도망치듯 서둘러 떠난 그녀의 매장 앞에서 하염없이 볼때기를 유리창에 짓이겨본다. 그래 저 의자였어 날 이선빈으로 만들어 준 곳. 저 기구였지 내 머리를 뜨겁게 달궈 주던 것. 이럴 줄 알았다면 내 너의 뜨거움을 머리로, 가슴으로 더 담을 걸 그랬다. 그녀가 해맑게 맞아줬던 데스크, 주인 잃은 텅 빈 의자가 마치 내 마음 같구나. 데스크야 너는 맘 알지, 우린 알지...


다른 미용실을 찾아야 했다. 차를 타고 25분 달려 도착한 친정언니네 미용실. 친정언니 머리를 너무 이쁘게 해 주셔서 또 한 명의 내 마음을 바칠 주인공을 찾아 거까지 갔더니만, 혹시 이전 원장님한테 연락받은 건 아니시죠. 이선빈 사진 들고 오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지령이 미용실마다 내려진 건 아니겠지. 이번에도 역시 그놈에, 술꾼도시여자들의 이선빈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뿌리부터 한가닥 한가닥 너무 충실하게 똘똘 말아주셨다.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요구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이보다 더 꼬불거릴 수 없는 거대한 짜파게티 면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히피 펌이 완성됐다. 우리 동네 원장님을 몇 년간 괴롭혀 떠나게 한 내 삶의 결론이었다.

돌아와요 원장님 이선빈 사진 안 들이밀게요.





한데 이상도 하지.

그전에 특징 없던 흐물거리던 파마보다 대차게 볶아낸 짜파게티 뽀글 파마가, 진짜 안 이쁜데 마음든다는 것이다. "그렇지, 파격이란 이런 거지" 속이 시원하달까. 수북한 머리숱으로 목덜미는 미친 듯이 땀띠 날 거 데, 어쩐지 한 마리 밀림의 왕 수사자가 된 기분이랄까. 무더위도 아랑곳 않고 보무도 당당히 갈기를 휘날리며 마치 언덕 꼭대기에 서서 모두를 바라보는 기분이야. 어쩐지 근사한데.



또라이란
'정신적/육체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도덕적인 기준에 크게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출처 - 나무위키 -


2년 전 거울에 비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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