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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테크닉 배울까 말까

by 그리다 살랑 Jan 11. 2025
요즘 꽂힌요즘 꽂힌


원래 이 글의 제목은 온 세상이 분다버그 핑크자몽으로 가득 찼으면!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이 문구와 그림을 번갈아 보던 갓 11세 남아는 말한다.


"엄마 탄산중독이야"


어쩜 핑크는 이름도 핑크핑크할까. 핑크를 핑크 말고 뭐라고 부를지 다른 건 생각도 못하겠다. 처음 분다버그 핑크자몽을 보고 눈동자엔 하트가 뿅 떠올랐고, 한 모금 후엔 청량한 에이드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상상이 일었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먹는다. 분다버그 핑크자몽의 바다에서 어푸어푸 헤엄치고 허우적대고 싶다.


"... 아빠! 엄마 이상해!"

그래 제발 나가다오. 왜 자꾸 내 방에 오는 것이냐.





독립서점 겸 카페에 앉아 열심히 분다버그의 핑크색을 구현고 있었다. 도대체 이 단단하고 영롱한 유리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일단은 그저 열심히 바탕쌓고 있는데 옆 매장의 드로잉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그날 처음 보았고 조금 전 무작정 들어가 구경 & 약간의 상담을 하고 왔었다. "선생님!" 아줌마의 낯짝으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유리병은 어떻게 표현하는 건가요?" 페손님 중 한 분에게 줄 것이 있으셨던 선생님 어느새 내 테이블에서 허리를 숙이고 색연필 쥐고 계셨다. 당황하시면서 홀린 듯 "유리병은요, 이런 식으로 하면 병 느낌이 납니다" 하고 줄무늬(빛 비침이라고 할까)를 그려 주셨다. 두 개의 빛줄기로 단번에 이것이 유리병임을 명해 내셨.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나.


정규미술을 배우지 않은 나이기에, 그런 나만의 색깔이 있기를 바라서 지금까지 그림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활비, 교육비로도 빠듯한데 나에게까지 투자할 돈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3년간 설렁설렁 일지언정 그림을 그리면서 원근이라던가 표현법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게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자꾸 그려봐야 방향이 잡힐 것이기에 일단은 많이 그려보자 하며 있었는데, 혼자만의 결심이니 아무래도 느슨했다. 한데 오늘 드로잉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다니 우연이 아닌 게 아니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지 않을까, 얼마나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가.


드로잉 선생님은 주로 테크닉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실 거라고 했다. 테크닉을 배우면 나만의 색깔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내가 바라는 건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그림이 아니다. 그림은 완벽하지 않지만 나만의 색깔이 있는 그림, 이야기가 녹아진 그림을 추구한다. 지금 이 분다버그 그림도 선생님께 가져가면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실 테지만, 서투르지만 내 스타일로 완성한 이 그림을 브런치에 올리기로 한다. 그렇지만 고민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닐는지. 테크닉을 배운다고 모든 그림이 획일화되는 건 아닐 텐데. 아직 아무것도 안 배웠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러고 있다. 완벽한 그림은 아니더라도 완성도 있는 그림이 필요하다. 내겐 어느 정도의 배움이 필요하다.


한 달만 '드로잉 모임'에 join 해보기로 한다. 모임의 공간을 둘러보니 실력들이 만만찮다. 주눅이 들다가, 이곳에 다니기만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 꿈이 피어오른다. 금방이라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중요한 건 신에겐 오직 한 달 다닐 경비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테크닉을 배우면 나만의 색깔이 없어질 것 같다는 어쭙잖은 걱정은 한 달 후에 하기로 하자. 한 달 가지고 무슨 테크닉을 배우겠나. 정기적으로 주 1회 그림을 그리러 가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내 안의 그림력들이 알아서 활활 타오르기를.


막상 드로잉 모임을 간다니 데생도 해보고 싶고 크로키도 해보고 싶고 유화, 과슈, 아크릴 다 해보고 싶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캐릭터 중 뭘 할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 또 원대한 꿈만 꾸고 마음만 조급하다. 욕심부리지 말고 일단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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