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린 아이 울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야트막한 계곡 물은 꽝꽝 얼어버린 지 오래다. 얼음 너머 아담한 체구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소리의 발원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몸을 잔뜩 웅크린 산장 주인이 나와본다. 거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려는 찰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검은 코트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한 여인이 서 있다. 이상한 쇳소리를 내며 그녀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형이랑 싸워서..."
캠핑장 겸 글램핑장인 이곳에 우리밖에 없으니 망정이지. 아이가 형의 윽박지름에 울길래 나가서 계곡이나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형 편만 들고 자기는 내쫓으려 한다며 더 오열을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둘째가 조용히 하는 것이다. 둘째는 ADHD약을 먹으면 조금 얌전해지는데, 대신 입맛이 사라져 아무것도 먹질 않는다. 먹는 기쁨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꿈이 요리사이기까지 한 아이는 약을 안 먹겠다며 난리를 쳤었다. 글램핑 와서까지 먹는 즐거움을 뺏고 싶지 않아 약을 안 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불평불만짜증과 각종 요구사항, 실없는 소리로 가득한 입을 쉬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지식,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고 설명해야 하는 둘째. 극 I형의 남편과 큰아들, 그리고 나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혼자 쉬어야 에너지를 얻는 성향들이다. 그나마 집이면 각자의 방으로 피할 수나 있는데 피할 구석 하나 없는 글램핑 숙소에서 둘째의 온갖 말들을 듣기 힘들었던 큰 아들이 폭발했다.
한데 불똥이 나에게 튀었다. 내가 형을 말리지도 않고 머라 하지도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사실 아이가 내 말은 안 듣고 형만 무서워하니 형의 윽박지름이 반갑기까지 했었다. 14년 육아기간, 아이들 떼놓고는 어딜 간 적이 없었다. 남편을 졸라 내가 좋아하는 이 장소로 혼자만의 여행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혼자 가려니 뒤가 켕기기도 하고, 이곳은 또 아이들도 좋아하는 장소가 아닌가. 긴긴 겨울방학, 여행 계획도 없는데 아이들도 심심할 것 같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이들과 1박 하고 이어서 나 혼자만의 1박도 꼭 하리라. 1박 후 남편과 아이들 먼저 집에 보내려고 하는데, 발을 삐끗한 큰 아이에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 중인 우리 아파트... 하는 수 없이 모두가 함께 2박 3일을 지내게 되었다.
아이의 오열을 듣다가 형에 이어 이번엔 내가 폭발했다. "형 아니었음 엄마가 팰 거거든? 조용히 좀 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아!" 악다구니를 부렸고 아이는 뛰쳐나가 온 산짐승들을 깨울 요량으로 울어댔다. 같은 ADHD로서 누구보다 아이를 이해해주어야 할 내가 오히려 더 아이를 못 봐준다.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일 텐데. 미안해진 나는 얘기 좀 하자며 계속 말을 걸었는데 계곡 건너편에서 저리 가라고만 한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도 아이는 싫어했다. 하는 수 없이 책방이라고 꾸며 논 작은 공간에 들어와 털썩 앉았다. 글이나 써야겠다. 노트북이 필요하다. 돌계단을 올라 숙소에 뛰어갔다 왔는데 제기랄, 노트북 충전이 간당간당하다. 다시 올라가 충전선을 갖고 온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있는 건 아무리 여행이라도 쉼이 아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이 시간이 너무도 달콤하다. 동시에 불안하다. 너무 고요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얼음이 깨진 건 아니겠지, 힐끗힐끗 나무로 가려진 계곡 쪽을 자꾸만 쳐다본다. 30분 이상 지난 거 같다. 한숨을 짧게 내쉬고 일어섰다. 계곡 쪽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아들 둘이 축구공을 주고받는다. 발목이 삐어 계단 오르지 말라고 학원도 일주일 쉬었는데 저러고 공을 찬다고? "야 너 웬 축구를 하고 있어? 하지 마!" 소리를 지르려다 문득, 둘이서 같이 노는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큰 애는 동생이 제일 싫다며 악담을 퍼부었었고, 분노가 폭발해 애를 눕혀놓고 발로 밟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 후로 동생은 형을 피해 다니며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형은 자기를 죽이려 드는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놀 사람, 놀 거리가 없으니 서로 놀기도 하는구나. 감격스러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뻥이다) 멀리 숨어서 지켜본다. 웬수 같은 형제여, 아들들이여 참으로 감동이구나. 집에서도 좀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니. 어쨌거나 하루만 버티면 내일은 집에 간다. 왜 돈 주고 여행 와서 집에 가길 기다리는지. 고요한 엄마만의 1박은 언제 가질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