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다

by 그리다 살랑

가을은 깊어진다고 하는데 봄은 왜 깊어진다고 안 할까

'봄이 깊어진다 나이가 깊어진다' 뭔가 안 어울린다.

'관계가 깊어진다 주름이 깊어진다 시름이 깊어진다' 이건 어울리네.


가을 관계 주름 시름

깊어진다랑 어울리는 단어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다.

뭔가 진하다. 무겁다. 차분하고 고요하다. 심각하다.

이래서 봄, 여름과는 안 어울리는구나

'깊어진다'가 '관계'랑 만나면 뭔가 불륜냄새가 나기도 한다.


갑자기 깊어짐 타령이다.

나라는 사람은 깊어지고 있을까.

애정을 주었던 사람에게 생채기가 나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조용히 브런치를 열고 글을 적고 싶다.


깊어진다


무엇이 깊어지기에 이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불륜은 아닙니다.

왠지 겨울이 깊어진다고 말하고 싶은데 겨울은 옅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냥 봄이 깊어진다고 말하려니 봄은 깊어지는 거랑 안 어울린다.

무엇이 깊어진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상처'도 깊어진다와 잘 어울린다.

골똘함이 깊어진다. 생각이 깊어진다.

마음의 굴을 자꾸 파고 들어가는데 파도파도 편하게 쉴 곳이 안 나온다.

폭신한 침대와 보드라운 러그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고 있는 안락한 방이 나오면 좋겠는데

눅눅한 암갈색 흙덩이들만 나무의 잔뿌리들과 엉켜 나온다.

손톱엔 흙 때가 잔뜩이다.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흙덩이에 눈길이 간다.

한 줌 움켜쥐어본다. 보드랍고 질 좋은 흙뭉치 들이다.

생각 없이 그저 굴만 팔 뻔했다.

깊어지는 건 굴이 아니라 내면이고 싶다 성숙이고 싶다 연륜이고 싶다.

내면 성숙 연륜 지혜 인생

이 말들도 '깊어진다'와 어울린다.

한없이 깊어지던 굴은 축축한 무덤 같은 곳이 아니었다.

나무뿌리가 물을 흡수하고 숨을 내쉬며 자라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깊어질수록 알알이 영그는 자연의 섭리가 어려있었다.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깊어지고 이 공간에 애정이 깊어진다.

나라는 사람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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