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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pr 14. 2024

결혼에 대해 하고 싶은 말

결혼과 어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혼 18년 차입니다.

이 글은 지극히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부디 욕은 마음속으로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모님의 46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늘 마음만 있지 바빠서 따로 챙긴 적은 없지만 올해는 치킨이라도 한 마리 배달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빠께 전화를 드렸다.


"아빠 한 사람이랑 46년 동안 살면 어떤 느낌이야?"

"느낌? 뭐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

그나저나 너희 엄마가 진성이(가수) 본다고 안 나와서 데꼬 나온다고 식겁했다."


결혼기념일 날 엄마는 지역 축제에 가수 진성이 온다는 소릴 듣고 가수 구경을 갔다가 아빠에게 잡혀 돌아왔다.


사이좋은 내 부모님은 항상 내가 비빌 언덕이며 손주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46년 긴 세월 동안 부모님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넘어 많은 희생과 인내를 실천하셨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두 분의 노력이 얼마나 숭고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친구들 눈에도 특이하다 싶을 만큼 사이가 좋다고 알려진 내 부모님도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그 속을 헤아려 보면 안 맞는 구석이 천지다.



다른 날 다시 시간에

다른 부모와 다른 형제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한 순간 만나 서로를 알아간다 치더라도

그건 알아가는 거지 둘이 맞다는 건 결코 아니다.


이렇게 다른 것만 차고 넘치는 남녀가 맞다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잘 맞는 듯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는 유효기간 정해진 큐피드의 화살이라도 맞은 듯 안 맞아도 서로 달라서 좋다고 하며 기꺼이 허니문으로 입장한다.


널리 알려진 치약 짜는 습관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치약을 끝부분에서부터 짜는지 중간부터 짜는지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니...

그걸 또 공감하게 되다니..


30년 가까이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다른 환경에서 살며 다른 습관을 가지고 살아온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으니 다른 것이 비단 치약 짜는 습관뿐일까?

초등학생들에게도 싸움거리가 되지 않을 법한 하찮은 이유로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부다.


부부는 완벽한 타인이다.

이기심을 기저에 깔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남편과 아내만큼 이기적인 사람도 없다.


부부는 지구상의 많은 남녀 중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만난 한쌍의 운명 공동체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손해 보는 짓은 결코 하기 싫어하는 존재들이다.

이기적인 인간은 노력과 수양을 통해 이타적인 인간이 되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내 배우자에게 만은 희생을 강요하며 끝없이 자신의 손해를 계산해 대는 경향이 있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 본다면


시댁에서 얻어 온 밭작물을 힘겹게 들고 올라와서

내 할 일을 다 한 듯 눕는 남편

아내는 그때부터 다듬고 소분하고 냉장고 칸을 비어 내 가며 정리를 하느라 쉴 수가 없다.

가뜩이나 시댁행이 피곤했었고 아내도 눕고 싶은데 남편은 거들 생각이 없고 침대와 한 몸이 된다면 울화통이 터진다.


아내 보다 힘이 센 남편은 짐을 나르는 기여한 공이 아내보다 크고 운전도 본인이 했기에 본인은 누워서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짐을 나르고 운전을 한 남편에 대한 고마움 보다 정리하는 본인이 더 힘든 것 같은 아내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불편한 시댁의 잠자리도 고단했는데 흙이 잔뜩 묻은 밭작물을 다듬느라 쉬지 못하는 아내의 고충은 나 몰라라 하고 본인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누워버리는 남편은 이기적인 사람인가?




부부는 이상하다.

사소한 이기심으로 끊임없이 다툰다.

각각의 개인은 그렇게 이타적이고 싶어 하면서

정작 둘에게만은 끊임없이 이기적이 된다. 아이러니하다.





주변에 결혼 한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남편과 또는 아내와 잘 맞다는 사람은  적이 없다.


사람 사람으로는 완벽한 두 사람일지라도 

남편 대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결코 사소하지 않은 갈등들을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현재도 남편이 주문한 정체 모를 택배 박스가 몹시 거슬리는 중이다. 또 어떤 먹을 것을 대량 구매 해서 쟁겨 놓을까 불안하다.)


그럼 어떻게 사냐고?

그냥 사는 거다.


부부는 같이 살 이유를 찾는 것보다 못 살 이유를 찾는 게 훨씬 쉬울 수 있는 내편인 듯 내편 아닌 존재다.


그래서 결혼 생활을 하며 난 내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해 보았다.


1. 나에게 더 집중하는 방법을 택한다. 


상대방이 변할 것이라 기대를 하지 않고 내가 좀 더 잘 살면 된다. 서로에게 간섭을 줄이고 결혼 생활 외의 본인들의 행복을 실현하면 된다.


위에 언급한 각자의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돌린다면 훨씬 이상적인 부부가 되겠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 것이 진리다.

바꾸려고 해 봤자 싸움만 난다.


기대라는 게 실망으로 돌아오는 순간 치명타를 입게 되니 그냥 각자에게 좀 더 집중하는 삶을 찾으면 서로가 편하다.


이 대안은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가능하고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부부 둘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때론 서로를 회사 여직원 또는 남직원 보듯 할 필요가 있다.


남편이나 아내를 회사 직원처럼 생각한다면 내비게이션을 잘못 보고 둘 중 하나가 로터리를 한 바퀴 더 돈대도 잔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직원의 실수에 버럭 화를 내어 분노 조절 장애를 의심하게 만들 사람도 아무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여직원 또는 남직원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커피 한 잔 정도 쏴 주는 센스를 보일 수 있다.


3. 조금 바보처럼 부부 생활을 해 본다.


얼마 전 외할머니 장례식 후 삼촌들과 앉아서 술만 퍼 먹는 남편이 미워 다시는 친정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음 날 본인이 먹어본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자는 남편의  말에 기분이 풀려 덜렁덜렁 따라나섰다.

난 가끔 모지란 구석이 있다.

망각이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난 경우에 따라 그 기능을 잘 활용하는 인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풀려 조잘댄다.

남편은 맛이 어떻냐고 묻고 다음에 또 오자고 한마디를 건넨다.

그러면 일단 게임 끝~~


 세상에 별 남자 별 여자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홀로 걷는 인생길 나이가 들수록 남편은 가장 편한 친구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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