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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pr 28. 2024

일상 속 딜레마

딜레마는 연속이지만 종류가 다르다.

삶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딜레마는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는 양자택일 상황에 인간을 놓이게 하곤 한다.

늘 그래왔기에 불혹의 나이에 겪는 딜레마가 새로울 것도 없지만 간간히 지난 세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옷을 고를 때 나이와 취향과의 은밀한 간극을 느낀다.

난 약간 공주풍 스커트를 좋아한다.

어느 날 내 또래 동네 여자가 공주풍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머리에 큰 리본을 단 채 걸어가고 있는 걸 보고 속으로 아차 싶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 것인지 그 순간  나이에 어울리는 패션 감각의 중요함을 느끼고 내 눈에 예쁜 옷 말고 내게 어울리는 무난한 옷을 사기 시작했다.

취향은 그대로인데 나이가 취향을 못 따라가니 아직 옷을 고르기 전 망설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이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붙는 옷, 쪼이는 옷은 이제 못 입게 되었다.

나도 한 때는 스키니 진을 좋아하던 여자였다.

이제 스키니의 유행은 지나갔지만 비슷한 옷을 입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는 느낌마저 든다.

밴딩이 몰래 숨어 있는 고무 바지에 늘 손이 가고

숨어 있는 밴딩이 장착된 바지를 입는다고 전혀 억울한 생각이 안 들 정도니 혈액순환이 멋을 이긴 셈이다.

몸빼 바지가 유수의 세월 속에서도 건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가려야 할 게 많다고 느낀다.

내심 억울하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것도 줄여야 한다. 저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 운동도 해야 한다.

참 해야 할 것도 많다.


탄수화물을 줄이기로 했다.

빵과 과자를 줄이기로 했다.

설탕을 줄이기로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젊을 때처럼 먹었다가 안 그래도 건강 염령증이 있는 내가 병원을 전세 내는 불상사가 생길 것이 뻔하다.

특히나 40대 이후부터는 건강을 과신하면 더더욱 안 된다.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모범적인 중년 그걸 누가 모르겠나?

건강한 음식들은 도처에 널렸다.

하지만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등을 고루고루 건강하기 먹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슬로우 푸드들에는 항상 많은 공을 들어간다.


건강한 밥상과 슈퍼 푸드 등에 눈이 가기 시작하고

소위 언헬시푸드(Unhealthy food)를 지양하고자 노력한다.

건강하게 먹으면서 운동도 열심히 해 줘야 한다.

전 보다 철저하게 그래야만 하는 나이가 도래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중년의 딜레마를 실감하게 된다.


몸에 좋은 건 손이 많이 가고 맛이 없다.

나는 워킹맘으로 24시간이 모자라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고 차려먹는 밥이 힘들어 캡슐 하나로 영양 공급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건강하게 차려 먹으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니 바쁜 와중에 먹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엄마의 역할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힘들지 않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건강하게 먹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탄수화물과 설탕을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 하니 줄여 보기로 했다.

요즘은 다들 건강에 관심이 높다 보니 설탕 대신 사용 가능한 슈가 프리 제품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또한 저당 고추장. 저당 잼, 제로 음식들 등 각종 저당 식품들도 많다.

글루텐 프리 음식 들 역시 인기 식품이다.

이들이 중년의 건강을 얼마나 보장해 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부작용을 마주하게 되었다.


탄수화물, 설탕을 줄여보니 늘 허기진 느낌이 나서 성격이 예민해졌다. 이런 황당한 부작용이...

역시 당 섭취가 중요하긴 한가 보다.


건강하게 먹으면 성격이 나빠지고 반대로 하면 건강이 나빠진다.

양날의 검을 잡듯 어렵기만 하다.

옷은 그렇다 쳐도 먹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현실은 무척이나 억울하다.

나이 들어 몸 어디 한 군데가 성치 않으면 하던 운동도 못하고 만다. 한때는 운동 부심으로 살던 때가 있었는데 눈 병변으로 이제 고작 해야 걷기나 간단한 근력 정도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이건 내 경우에만 해당한다 할 수도 있다. 독자님들은 미리미리 건강 잘 챙기시길...)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노리고 있었다.


건강한 음식들은 하나같이 비싸다는 것이다.

건강과 가계를 동시에 책임 질 의무가 있는 주부인 나는 이 둘 중 어느 것에 좀 더 비중을 둬야 할지 곤란하기만 하다.

즐겨 먹던 사과가 금사과로 둔갑한 후 사과를 덜 사 먹게 되었고 이맘때쯤이면 노란색 향기를 뿜어 대던 참외도 올해는 비싸서 선뜻 사기가 망설여졌다.

채소를 포함한 많은 몸에 좋은 음식들은 비싸다.

주방에서 쓰는 오일만 해도 올리브유 > 포도씨유> > 콩기름 식용유 등으로 등급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나질 않는가...

건강하게 잘 차려 먹으려면 양념부터 좋은 걸 써야 하니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을 위한 수고는 물론이고 소비되는 비용이 점점 만만찮아진다.

핀터레스트 이미지




멋보다 편안함이 우선이고

내 취향보다 나이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할 나이

입에 단 음식 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하는 나이

동시에 가정 재정 상태까지 생각해야 하는 그런 나이가 도래했다.


가끔은 짜장면, 칼국수, 라면. 패스트푸드 등을 대충 먹어도 건강한 중년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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