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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pr 21. 2024

유지 보수가 필요해

보톡스와 영양제로 연명하는 중년

몸은 너무나 정직하게 대세를 따르는 느낌이다.

노화라는 자연스럽 공평한 과정을 몸소 느끼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초도 그에게 불멸의 삶을 선사하지 못했 듯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이다.

신체 각 기관들은 출생과 동시에 쓰이고

닳고 닳는 과정을 겪는다.


굳이 공평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거부감 마저 드는 노화는 어느 날부터 내게 동네 의원에서 날아오는 문자 한 통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보톡스 할인 이벤트 문자이다.


주름이라는 노화가 데려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 미간에 찾아왔다. 미간에만 온 것이 아니다. 눈가에도 찾아왔다.

이 손님은 얼굴에 붙어 영원히 돌아갈 생각이 없고 점점 깊어지는 양상을 띤다.


엎드려 머리를 감고 난 후 미간에 생기는 두 줄과 웃을 때 생기는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을 보다 못한 난 보톡스라는 젊음의 신이 내린 물질을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보톡스는 효과가 보통 4개월 정도 지속 된다. 고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간격을 두고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띵똥~

동네 의원에서 문자가 왔다.

○○이벤트

보톡스 30% 할인


난 쪼르르 동네 의원으로  보톡스 맞으러 왔어요를 접수했다.


마취 크림 발라 주세요.

보통 보톡스는 그냥 하시던데..

그래도 발라주세요.


경험치로 미뤄 보아 짧은 순간 시술이 끝나는 보톡스 주사라 해도 마취 크림 없이 덤볐다가

발꼬락이 꼬부라 드는 고통을 맛봐야 한다.

그래서 난  마취 크림을 발라 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곤 한다.

침대에 누운 후 배 위에 올려주는 예쁜 인형을 손으로 잡았다.

주삿바늘이 얇고 볼품없는 내 피부에 구멍을 내는 순간 본능적으로 인형을 움켜쥐게 된다.


이 순간의 고통을 주름 완화로 맞바꾸고 약간의 멍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그랬다. 보톡스는 늪이라고..


이제 주기적으로 맞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하지만 주변에 아주 많다.

나처럼 그 강을 건넌 사람들이 말이다.

난 그들의 동의와 무관하게 나만의 끈끈한 유대를 그들과 형성하며 다시 한번 시간의 공평함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시간은 공평해서 좋지만 때론 악착같이 공평해서 씁쓸하기도 하다.




안 그래도 요 근래 눈 두덩이가 쳐지는 느낌이 들더니 아니나 다를까 힘없는 속눈썹이 자꾸 눈을 찌른다.

생기다 만 신체는 속눈썹조차 힘이 없는 신세다.

앞으로 유지 보수를 위한 더 험난한 길이 남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조금 슬퍼진다.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인으로 나이 들 것인가?

적극적으로 유지 보수에 나설 것인가? 하는 것이

내 또래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확연하게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은 비단 겉보기 등급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신체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의 하향 곡선이 그간 젊음이라는 방어막을 뚫고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날 티브이 건강 프로그램을 넋 놓고 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아닌 이 몸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여기저기 옛날 같지 않은 몸..

어머니 왜 날 이렇게 낳으셨나요? 묻고 싶을 만큼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각종 병력들과 신종 병력들

갑상선 기능 저하, 연 4회 거르지도 않고 찾아오는 감기, 정상 수치를 넘나드는 혈당, 심한 저체중, 약간의 불안. 요즘 제일 걱정인 망막박리까지...


구질구질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비타민을 필두로 각종 영양제를 거르지 않고 먹어주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이중적인 인간이 요즘 내 모습이다. 

막을 수 없는 가는 세월 앞에 행여나 아파 골골 되며 민폐 중년, 더 나아가 민폐 노년이라도 될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아직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이대로 가는 세월에 수동적으로 휩쓸려 가기 싫다.

팔이 라도 젓는 노력은 해 보고 싶다.


선물 받은 영양제가 버려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 알이 아쉽다.

젊을 때는 귀찮아서 있어도 안 먹다 결국 유통기간이 지나 버리곤 했던 영양제들을 철두철미 하게 챙겨 먹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역시 똥줄 정도는 타 줘야 뭔가 하는구나 싶다.


유지 보수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고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고

매일 영양제를 챙겨 먹는 중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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