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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y 05. 2024

돈은 계속 없는 거야

백(bag) 없는 여자

지난 3월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3월이면 철 지난 겨울 코트가 조금 저렴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올 겨울 대비 코트를 장만하러 갔다.


한 달 월급으로 한 달을 사는 사람들은 뭔가 려면 용기와 세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겨울 옷들은 다 들어가고 없었다.

봄봄 외치는 얇은 옷들만 휘영차란한 백화점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냥 나온 김에 윈도쇼핑이나 하자 싶어 밝고 화려한 백화점이라는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못 먹는 감은 찔러봐야 제 맛 

괜히 가방 매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얼마예요?

330만 원입니다.

뒷말은 들으나 마나 한 말이라 한 귀로 흘렸다.

코딱지 만한 가방의 가치가 330이라니..

내 몸값보다 비싼 듯싶다.

둘러보고 올게요 라며

둘러보다 안 올 뻥을 치고

중저가 가방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매장 안 예쁜 가방

얼마예요?

68만 원인데 10프로 할인해요.


둘러보고 올게요 라며  녹음된 듯한 말을 남기고 나와 집으로 왔다.


여자에게 백이란 영부인에게 진상될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다.

(지금부터 가방이라 함은 모두 알만한 브랜드의 고급 백임을 알려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이 나이 먹도록 좋은 가방 하나 없다.

이쯤 되니 안 사는 건지 못 사는 건지

나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주변의 여인네들은 하나씩 있는 그 가방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말이다.

몇백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100만 원은 예상해야 하는 가방 값을 지불한 후 그 달 생활이 당최 가능한 건지 의문스럽기 그지없었다.

대놓고 묻기도 그렇고 그냥 그렇게 나는 가방 없는 여자가 되었다.



가방이 없는 이유를  솔직히 써 보자면


돈이 없다.

당연한 말이다.

사실 68만 원 정도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가방과 장보기를 저울질하다 보면 결국 장보기로 저울이 움직인다.

돈으로 장을 몇 번 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니 가방은 또 물 건너간다.

애들 학원비까지 계산해 보면 저울질도 필요 없다.


가방이 없다.

명품이 아니라도 구색 정도는 갖출 가방이 몇 개는 있어야 이것저것 용도에 맞게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럴듯한 가방이 하나만 있다면 분명 나는 가방의 노예가 되어 애지 중지 머리에 이고 다닐 수도 있다.

결국 아끼다 똥이 되는 격이니

두세 개 못 살 형편이면 시도도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옷이 없다.

사람이 구색을 갖추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지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옷과 신발은 저렴이로 입고 신으며 가방만 좋은 것을 들어 봤자 짝퉁으로 오해받게 될 것이다.

뭔가 밸런스가 깨지는 느낌이  것이다.

그러니 구색을 갖추지 못할 바에는 가방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에서 처럼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드라마 속에서도 사람의 형편을 평가할 때 가방에 앵글이 맞춰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좋은 가방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그래도 형편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가방이 내뿜는 상징적 이미지에 관심을 둔다면 나 역시 지금 나이쯤이면 적당한 가격선에서 가방 한 두 개는 있어도  나이이다. 

맞벌이하며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하기에 그 보상으로 몇십 또는 몇백만 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가격대의  가방 정도는 사도 될 듯한데 그 또한 쉽지 않다.


가방을 산다면 잃어버리는 생활비는 기회비용이 될 것이고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면 십만 원도 오만 원도 무턱대고 지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제 이쯤에서 결론을 내보자면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 거다.


명품 가방 필요 없다. 내가 명품이면 되지

라는 이딴 소린 안 하고 싶다.

나도 다들 들고 다니는 갖고 싶다.



돈이 없다.

좋아하는 드라마 속 대사를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돈은 언제까지 없는 거야??

돈은 항상 없는 거야.

응??

지금은 공부하니까 없는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다행히 합격했어. 공무원 했어. 안정적으로 월급 들어와. 그럼 결혼하겠지? 집 구하겠지? 그게 네 집이야? 은행  집이야. 또 없는 거야. 그런데 애가 있겠지. 애들이 대학 간대 그럼 또 없는 거야..
중략 ~~
    
                                                 <멜로가 체질> 중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저 대사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내가 돈을 벌지 않던 시절도

내가 돈을 버는 지금도

돈이 없는 것은 매 한 가지다.

정말 드라마 대사처럼 돈은 계속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살 때 고민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남들 눈이 부끄러워 당당하게 사고 후회 했던 순간도 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내 40대는 여유 있고 편할 줄 알았다. 핑크빛 미래를 그리다 뒤통수를 맞듯  아이들이 커가면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뇌는 늘어나기만 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역시 나의 고뇌만큼이나 늘어났다.

가족들 식사에 시원하게 내가 먼저 계산해 줄 정도는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머릿속에서 무궁무진한 덧셈과 뺄셈을 하고 있는 쪼잔한 40대가 되었다.

성실이 물질적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실감했고

돈이 항상 없는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 데일리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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