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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y 19. 2024

시절 인연을 이해하게 되었다.

프로 혼밥러가 된 이유

학창 시절

나와 짝이었던 희경이가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며칠 후 나 역시 코맹맹이 소리 내며 콧물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난 별생각 없이 그것도 아주 대수롭지 않게 짝에게 말했다.

"너한테 감기 옮았나 보다"

짝은 나의 그 한마디에 예상치 못한 급발진으로 답을 해 왔다.

"나 그  소리를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거든.."

짝의 극노에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웠다.

감기 옮았나 보다는 말이 무슨 이유로 짝의 발작 버튼을 누르게 만든 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난 이내 짝에게 사과를  했다.

짝과 등을 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난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인간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1학년에 입학하던 때

난 그야말로 열성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이 학교 행사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같은 반 엄마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고 뒤풀이에도 참석하며 사교성 좋은 꽤나 적극적인 엄마가 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다.  인간관계가 넓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써야 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 한잔 해요를 공수표로 날리던 나는 직장일과 하던 공부에 쫓겨 차 한잔 할 시간을 내는 것이 사실 무척 부담스러웠다. 결국  내가 날린 차 한잔의 공수표는 정말 공으로 돌아가 지켜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냥 엄청 바쁜지 바쁜 척하는 건지 모르는 시간 내는 힘든 엄마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과도 저 사람과도 다 친해지고 싶어 가당치 않는 미션을 수행하듯 그들에게 메시지로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뱉은 말을 못 지켜 생기는 마음의 가책이라도 덜어 보려 미안해하며 그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가 연락을 하거나 말거나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 뻔한데

사교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말만 내뱉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압박하며 나를 괴롭혔다. 


가지를 치듯 여러 사람과 어울리길 원하며 소위 말해 얄팍하게 다리만 살짝 걸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두루두루 다 친해야 하고 남들 눈에 성격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 지길 원했다.

싸워 마음이 불편하기보다 내가 한발 물러서는 편을 택했다.

태생이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쉽지 않았을뿐더러 때론 피곤하기까지 했다.


프로 혼밥러가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상호 작용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건 밥을 먹기 전부터 메뉴를 합의해야 하고 얼굴을 보며 담소를 나눠야 하는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가 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또는 말을 안 하고 싶다는 이유로 마주 보고 앉아 밥만 먹고 헤어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나는 혼자 술까지 먹을 수 있는 최고 레벨의 혼밥러가 되었다.(술은 좀 아니긴 했다. 맥주 500cc도 다 마시기 버거운 내가 술집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혼술은 집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쇼펜하우어-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지만 정작 간과 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관계라는 건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유지된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특히나 일방적 일 수 없기에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며 양보도 배려도 바탕이 되어야 한다. 때론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쉬운 듯 쉽지 않은 인연을 수없이 만나며 살아왔다.



수많은 인연들을 맺어왔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때는 맺어졌고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인연들의 

대부분이 한 때로 끝났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듯

한 계절이 끝나면 다음 계절이 오듯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헤어지지 않을 꺼라 생각했던 인연조차도 어느새 잊히고 기억에서 가뭇하다.


때론 좋은 기억만 남은 인연도 있었고

더러는 그렇지 않은 인연도 있었다.

좋은 기억만 남은 인연이었을지라도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나이가 되었다.


관계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애써 잡아 둘 필요는 없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

남을 사람은 결국 남게 되고

갈 사람은 결국 가게 된다.

관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인연에 목맬 이유가 없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아들들이 한 번씩 묻는다.

엄마 친구 없지?

물음에 대답을 해 줘야 하니 목청을 가다듬고 믿거나 말거나 한마디 한다.

학교 다닐 때 복도 걸어가면 다 내 친구였다.

어른 되어생일 때가 되면 생파를 서너 번은 했었다.

하지만 다 의미 없더라. 몸만 피곤하더라.


편한 친구나 지인들 앞에서 농담반 진단반의  너스레를 떨어보곤 한다.

나를 만나려면 한 달 전에 예약하라는 재수 오지게 없는 너스레...

하지만 결국 곁에 남을 사람은 다 남게 된다는 것을 불혹을 보내며 알게 되었다.


시절 인연을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시절 인연: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아무리 바쁜 척을 해도 결국 곁에 남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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