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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여 봅니다
줍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
바닥에 떨어진 만원을 본다면
by
송주
Mar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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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2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만원 주웠어
자식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엄마로서
작은 것이라도
네 것이
아니면 욕심 내지 말고
비단 그것이 길에 떨어진 작은 돈일지라도
발에 밟히는 흙이거니 생각해라
라고 말해야 하는데
순간 내 이성은 만원에 홀려 나가
공자님이 통탄할 만한
한
문장을
발사했다
.
CCTV 있어?
개똥 같은 소리에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 봐 개똥 같은 대답을 하는 아들
찾아볼게
공동정범이 될 뻔한 이 망측한 대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이 다니는 학원 건물 2층 다이소는 아들의 참새 방앗간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곳에 갔다가 만원을 주웠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앞에서 차를 마시던 친구가 나와 아들의 통화 내용으로 상황을 짐작하고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CCTV 있냐고 묻던 말이 내포한 의미가
무색하게 아들을 교훈했다.
애초에 네 돈이 아니었으니 가지지 말고 카운터 직원에게 라도 가져다줘라.
읽어버린 누군가가 찾으러 올 수도
있고
죄(유실물 점유이탈 횡령죄)가 될 수도 있다.
아들은 내가 시킨 대로 직원에게 주운 만원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것이 아니면 손도 대지 말라고
누누이 가르쳤지만 중학생이나 되는 아들은 바닥에 떨어진 만원을 취할지 말지 갈등했기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들은 만원을 줍고자 했고 그러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죄책감을 덜어 줄 나의 동의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누구나라도 내 돈이 아닌 돈을 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만원 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는 걸 보면 갈등이 생기게 될 것이다.
다이어터가 먹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하듯
존경하는 세종대왕님이 눈앞에서 청색 빛을 뿜어 내고 있다면 신발 바닥에 껌이라도 붙여 모시고 와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다이어터들도 먹고 나면 참을 걸 하는 후회를 하듯
만원도 모른 척 주머니에 넣는다면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부끄럽지만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나는 아들의 번뇌를 다 잡았다.
누가 가져가도 별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 만원
누가 가져가도 가져갔을 듯한 만원을
취한 이가 나나 아들이 아니었으면 됐다고 생각하며 그날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갔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큰돈이면 생각조차 못 할 것인데 애매한 액수가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져 나와 나 좀 주워가줘요 하는 듯 다소곳이 놓여 있으면 누구라도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만원을 주워 재수가 아니라 애초에 없던 것일 뿐이라 생각하며 더 이상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깟 만원 아쉬워서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세일 중인 햄버거 4개 값이긴 했다. 하하
아들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전화
따윈 하지 말고 그냥 경찰서로 가져가라.
그것이 양심도 운도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일 수도 있다.
참고: 경찰에 접수된 유실물은 6개월 이상
분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습득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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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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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쓰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세상 모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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