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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pr 04. 2024

요조와 내가 닮은 점

난 도대체 뭐람?

인간 실격의 요조는 사람과의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 익살꾼을 자처해 익살을 부린다.

나도 사람과의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

수다 쟁이가 되어 계속 말을 해 다.

요조와 나의 공통점은 침묵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점과 불편함에 대한 해결책을 상대가 아닌 본인에게 지운다는 것이다.


침묵이라는 공간 안에 깃들어 있는 어색한 정적은 심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불안한 소음처럼 목구멍을 쬐어와 숨이 막히게 한다.


 그 순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

어색한 그 분위기에서 난 항상 입을 먼저 떼는 약간은 오줄없는 캐릭터가 된다.


결국 수다쟁이가 되어 그 순간의 나를 다른 나로 포장하고 난 후면 피곤이 몸 위로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다시 동굴 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무사히 침묵을 방어했다는 안도보다 뜻 모를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나를 들켰을까? 나를 들켰겠지? 내 상처가 드러났겠지? 이 놈의 주둥이..


본인의 익살이 일부러 하는 연기라는 걸 들켜버린 요조의 당황스럽고 불안한 감정과는 다르게 나는 나를 과하게 오픈한데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니 그건 바로 자책이다. 


차라리 요조처럼 실없는 익살꾼이 되면 낫다.

역시도 실없는 익살을 할 때가 있다.

문제는 상대에 따라 익살이 아니라 자조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소릴 해대는지 의문 스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차라리 치사를 하면 좀 나으려나 싶지만 그것도 못하는 성격이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것도 못하는 성격이다. 

나는 다시 걱정한다. 내가 가여운 사람이 되었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사교성이 좋다고 했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교성 좋은 사람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있다.

나를 드러내면 상대도 마음을 연다.

어색한 침묵이 미치도록 싫으니 입을 열고 자조를 하든 익살을 하든 해 댄다.

그럼 어느새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러다 아주 깊은 곳에 들어가서 입 턴 보람도 없이 이불킥을 날리고 있는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필자는 철저하게 외향형라고 자부하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불혹이 반이 된 이 지점에서 본인이 진정한 외향형인지 대한 상당한 의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쓰잘데기 없는 서평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일간실격의 요조( 다자이 오사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저렇게 밖에 못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면

지독하게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이었던 그가 첫 번째 동반자살이 혼자 살아남아 실패로 끝난 후 죄책감으로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져 삶을 지탱하기 버거웠으리라 생각했다.

주색에 빠졌고 쇠약해진 몸에 병이 찾아왔다.

죄 많은 인간이라 본인을 자책하던 그는 결국 다섯 번째 자살을 성공하며 스스로 죄 많다 했던 삶을 마감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두 본인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글 속의 주인공에게는 그런 힘이 느껴지지 않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소름 끼치도록 솔직했던 자아 성찰은

사는 게 지옥인지 죽는 게 지옥인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만큼 처절했다.


그렇다고 그가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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