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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pr 18. 2024

죄는 별로 없는데 실수는 많은 인간입니다.

놓지말자 정신줄!

수업을 가기 손에 종이 쓰레기를 가득 들고 내려오던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눌렀다. 분리수거 장으로 먼저 가서 쓰레기를 버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내려가는 도중 6층에서 잠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6층에 사는 세희 씨가 나를 보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언니 엘리베이터 좀 잡아 줘요. 집에 휴대폰 두고 왔어요."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붐비는 시간도 아니었기에 엘리베이터 문 열림 버튼을 잠시 누르며 세희 씨를 기다렸다.


"고마워요 언니"라는 세희 씨의 말에 안도와 끈끈한 동질감을 느끼며 내가 한 말은


"호호 세희 씨 나랑 같네. 나도 휴대폰 두고 와서 다시 올라가야 되거든요"

세희 씨를 만나기 직전 나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단 분리수거 후 다시 집으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다시 집에 도착한 나는 휴대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이동한 동선을 따라가며 휴대폰을 찾아 나섰지만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 귀신이 곡할 노릇에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은 다 됐고 휴대폰은 안 보이고..

휴대폰 찾느라 늦었다는 변명을 한다면 한심한 사람이 될 것이고 다른 이유를 댄다 한들 지각한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


증발해 버린 듯한 휴대폰을 찾기 위해 급히

컴퓨터를 켜고 카카오톡에 접속했다.

그리고 남편과 지인들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리고 내게 전화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모두 '또 시작이네, 송주답다' 하는 뉘앙스의 말들을 메시지 창에 남기기 시작했다.

그래 또 시작이다.

잊을 만하면 풍겨  바보 냄새.. 어흑

지인들은 꽤나 익숙한 듯 내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 어디에서도 전화기 소리나 진동 소리 비슷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내가 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분리수거 장.. 설마 

그래도 가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 휴대폰을 두고 온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들른 곳이 그곳밖에 없었기에 급히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수업 시간은 지체되어 갔고 난 점점 안절부절 똥 마려운 반려견 상태가 되었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 분리수거 장에 도착했다.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내 휴대폰은 내가 버린 종이들 사이에서 처량한 자태를 뽐내며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 윙~~~


순간 안도했지만 곧 자책했다.

폴더형 휴대폰 위의 고리에 손가락 끼우고 있다가 종이 쓰레기와 함께 분리수거 통으로 골인시켜 버린 것이다.


건망증 인가? 아니다 그냥 실수다.

그렇게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내게 해 본다.



죄는 별로 없는데 실수는 많은 인간입니다.


살면서 각종 다양한 실수들을 해 보았는데 그중 단연 백미로 히는 내 실수는 고 1 인 큰아들이 초 1이었을 때 일이다.

아들의 초등학교 첫 학예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날 아들 반의 맞춤 복장은 한복이었다.

아침에 늘 그렇듯 시간도 없고 후다닥 한복을 챙겨 학교로 보냈다.

겨울이었지만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름 때를 빼고 광을 낸 나는 학교 강당에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느 엄마들처럼 내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던 순간 내 금쪽같은 큰아들이 조금 유별난 모습으로 무대 위에 등장했다.

오~ 노

마치 품바 타령의 각설이를 연상케 하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그만 뇌정지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아들의 한복 윗도리 소매 밖으로 아침에 입고 간  후드티 팔 부분이 반이나 드러나 있었다.

바지도 한복이라기보다 개량된 반바지 같았고 내복이 무릎 아래로 신종 타이즈인 것처럼 나와 있었다.


함께 한 아들반 친구들은 모두 예쁜 한복 자태를 뽐내며 귀여운 율동을 하는데 난 유독 내  아들의 한복에만 꽂혀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깨달았다.

큰 아들이 입고 있는 한복은

큰 아들이 어릴 때 입다 작은 아들에게 물려준 작아진 한복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그날 학예회를 즐길 수 없었다. 아들에게 미안했고 담임 선생님께는 창피했고 동네 지인들에게는 모지리가 되었다.

또한 엄마는 원피스 입고 예쁘게 꾸미고 와놓고 아들은 그지꼴로 보냈다며 동네 언니들의 조소 섞인 놀림까지도 함께 받아야 했다.


 

나이 탓도 아니다.

바쁨 탓도 아니다.

그냥 내 탓이다.


한 살 한 살 이 바보짓이 더 심해질까 문득 겁이 난다.


그래서 오늘도 외쳐 본다.

놓지 말자 정신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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