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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울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지방 촌놈 아들

by 송주

아들이 2박 3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여행 갔다 온 아들의 몰골은 거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 얼마나 놀면 저런 몰골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모자 포옹 후 옷을 입은 채로 아들은 여행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둘 다 선 채로 이야기를 하고, 듣고 하다

이거 서서 들을 길이의 썰이 아닌 듯싶어 아들을 앉히고 나도 앉았다.

첫날 연락 한 통 없이 신용카드 사용 문자로 생사 여부를 알려주던 아들은 미주알고주알 날짜 순서 대로 수학여행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남산 돈가스는 맛이 별로였다고 했다.

입이 짧은 아들의 맛 평가는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넘어갔다.

아들은 롯데 월드에서 멀미가 나서 놀이 기구를 많이 못 탔다고 했다. 지방 놀이 공원 기구들 보다 무서운 게 너무 많아 이래저래 땅 위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롯데 타워 사진을 내게 보여 주었다.

롯데 월드에서 롯데 타워가 보이는지 처음 알았다.

유명 사우디 인플루언서를 만나 사진도 찍고 숙소에서도 신나는 밤을 보냈다고도 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재미가 없었고

모 대학에서 관람한 뮤지컬의 배우들은 엄청 잘 생겼다며 한참 썰을 풀어내던 아들은 못 해 본 게 하나 있다며 아쉬워했다.


내 아들은 또래에 비해 순수하고 순박한 편이다.

아들의 생활 기록부에 적인 순수와 순박이라는 단어를 나는 쏙 마음에 들어 한다.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린 것과 같이 아들 역시 속에는 능구렁이가 들어 있는지 몰라도 겉보기에는 아주 순수해 보인다.

또 모나지 않고 착한 성격이다.

아들은 또래 성숙한 아이들에 비해 키도 작고 앳되다. 그래도 약지 않고 순수한 아들의 성격을 내가 참 좋아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순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싶은 걱정도 든다. 모든 부모가 읊어대는 레퍼토리지만 문득문득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이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과연 중학생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가 싶은 소리였지만 생각할수록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서울 사람이랑 대화를 못 해 봤어."


지방 사람 특히 밑에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서울 사람에 대한 조금의 환상을 갖고 있다. 서울말과 경상도 사투리가 마치 이중언어라도 되는 것처럼 서울말을 흉내 내기도 하며 수도 서울을 그렇게 동경하기도 한다.

수학여행 가기 전 아들에게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도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였다. 언제 적 얘기를 하는지 내가 말해 놓고도 참 기가 찬다.

엄마나 아들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서울 사람과 대화를 못해 아쉬운 아들은 샤워 후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난 아들이 여행에서 못 해보고 내려온 서울 사람과 프리토킹을 위해 조만간 서울 여행을 한번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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