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Apr 27. 2024

아들이 서울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지방 촌놈 아들

아들이 2박 3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여행 갔다 온 아들의 몰골은 거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 얼마나 놀면 저런 몰골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모자 포옹 후 옷을 입은 채로 아들은 여행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둘 다 선 채로 이야기를 하고, 듣고 하다

이거 서서 들을 길이의 썰이 아닌 듯싶어 아들을 앉히고 나도 앉았다.

첫날 연락 한 통 없이 신용카드 사용 문자로 생사 여부를 알려주던 아들은 미주알고주알 날짜 순서 대로 수학여행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남산 돈가스는 맛이 별로였다고 했다.

입이 짧은 아들의 맛 평가는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넘어갔다.

아들은 롯데 월드에서 멀미가 나서 놀이 기구를 많이 못 탔다고 했다. 지방 놀이 공원 기구들 보다 무서운 게 너무 많아 이래저래 땅 위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롯데 타워 사진을 내게 보여 주었다.

롯데 월드에서 롯데 타워가 보이는지 처음 알았다.

유명 사우디 인플루언서를 만나 사진도 찍고 숙소에서도 신나는 밤을 보냈다고도 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재미가 없었고

모 대학에서 관람한 뮤지컬의 배우들은 엄청 잘 생겼다며 한참 썰을 풀어내던 아들은 못 해 본 게 하나 있다며 아쉬워했다.


내 아들은 또래에 비해 순수하고 순박한 편이다.

아들의 생활 기록부에 적인 순수와 순박이라는 단어를 나는 쏙 마음에 들어 한다.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린 것과 같이 아들 역시 속에는 능구렁이가 들어 있는지 몰라도 겉보기에는 아주 순수해 보인다.

모나지 않고 착한 성격이다.

아들은 또래 성숙한 아이들에 비해 키도 작고 앳되다. 그래도 약지 않고 순수한 아들의 성격을 내가 참 좋아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순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싶은 걱정도 든다. 모든 부모가 읊어대는 레퍼토리지만 문득문득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이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과연 중학생 입에서 나올 한 말인가 싶은 소리였지만 생각할수록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서울 사람이랑 대화를 못 해 봤어."


지방 사람 특히 밑에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서울 사람에 대한 조금의 환상을 갖고 있다. 서울말과 경상도 사투리가 마치 이중언어라도 되는 것처럼 서울말을 흉내 내기도 하며 수도 서울을 그렇게 동경하기도 한다.

수학여행 가기 전 아들에게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도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였다. 언제 적 얘기를 하는지  내가 말해 놓고도 기가 찬다.

엄마나 아들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서울 사람과 대화를 못해 아쉬운 아들은 샤워 후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난 아들이 여행에서 못 해보고 내려온 서울 사람과 프리토킹을 위해 조만간 서울 여행을 한번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