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Apr 28. 2024

자식이 객관적으로 공부를 못하면

아이 어릴 때는 몰랐던 이야기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고 고소득이 성적과 비례관계가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또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건강이 이 모는 것들 위에 있다는 지당한 사실도 다 알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하나 같이 똑같이 말한다.

"공부 보다 잘 뛰어놀고 사회성 좋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공부 잘하는 거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호호호"


나도 그랬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면 그만이지 뭘 더 바랄까?


하지만 이런 교과서에 나오는 말은 아이가 자라고 숫자들로 수치화된 성적표를 부모 앞에 들이미는 순간 태산 같은 후회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객관적으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오는 아이는 비율적으로 잘 없기 때문에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를 수도 있다.


내가 80년생이고 우리 세대는 별 보고 나갔다 달 보고 들어오는 자율 학습 세대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라는 기관 안에서 대부분의 학습을 해결하던 시대였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이 지방이라 서울의 분위기는 또 달랐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대형 입시 학원을 다니던 지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친구들 중 대부분은 혼자 공부하고 혼자 터득하고 혼자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 역시 멋진 성적표를 부모님께 들이밀진 못했지만 지금 내 아들들과는 다른 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일 년에 4번 번민과 고뇌가 하늘 높이 승천하여 집 앞 절로 나를 인도하는 시기를 맞는데 그 시기는 바로 아들들의 시험 기간이다.

집 앞 절

시험이 내일인데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나지 않는 이 우라질 녀석들을 깨우기 위해 등짝 스매씽에 온갖 감정을 실어 날려도 그때뿐..

다시 내 시선이 절을 향한다.(무교입니다. 급할 때만 불교~~)


간신히 12시에 깨워 놓으니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아들의 울림

"엄마 ~~~  배가 조오나  아프다."

하 ~ 인생 ~~그러고는 또 나올 생각이 없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다.

시중의 모든 육아서는 대부분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낸 성공한 엄마 스토리이다.

아이의 모든 문제는 부모 탓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만 보더라도 오은영 박사가 지적하는 아이 문제의 원흉은 대부분 엄마나 아빠다. 그래서 난 오은영 선생님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난 볼 때마다 억울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어쨌길래 저런데?


아들의 지능은 엄마를 닮는다는 과학적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뻗친다.

결론은 또 엄마 탓이잖아...

난 지는 것도 싫어하고 욕심도 많은 편인데 우리 아들들은 나를 닮은 것 같지 않다.

찔리는 게 있다면 내가 20대 때 겁나게 놀았다는 거.. 그 정도가 다다. (참고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능도 나쁘지 않다. 아빠 134 엄마 122 아들 101 124)

그럼 도대체 왜왜왜 전문가들은 부모 탓이라 하는 건지? 왜 우리 아들들은 저렇게 성실하지 못한 건지?

그리고는 돌아서서 다시 풀이 죽는다.  부모 탓이라니 부모 탓이겠지... 흑흑


언제부터인가 엄마들 모임이 게는 기피 모임이 되었다.

자식 자랑 특히 성적이나 등급이 이야기 주제가 되니 난 딱히 할 말도 없고 나도 사람 인지라 부럽기도 다.

집으로 돌아오면 경청을 하고도 무척이나 피곤해 지곤 했다.

아이 어릴 때 아이가 자랑스러워 아무도 모르지만 어깨에 힘주고 다녔던 그 시설을 지금 뼈 저리게 후회한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니 절대 입 밖으로 자랑 따위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당연한 깨달음을 이제야 자식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해의 폭도 무척 넓어졌다.



요즘은 딩크 족 친구들이 있는 모임이나 강아지 모임에 가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

40대 조금 더 보편적이고 이로운 가치 추구를 위한 유의미한 대화를 하기에 자식 얘기가 주를 이루지 않는 그들과의 대화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뭐 하긴 나 역시 지방대 출신이라 딱히 할 말은 없다. 우리 부모님도 성실한 하기만 했지 좋은 학벌의 딸이 아닌 나를 보며 지금의 나 같은 생각을 했을까?


동네를 돌아다니다 영어 단어장을 들고 걸어 다니는 아이만 봐도 부럽고 눈물이 나곤 했다.

그 아이의 속사정은 모르지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에게 부러웠다.


스스로 하게끔 두지 않고 대치 키즈처럼 어릴 때부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여지를 주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숙제를 대충 했을 때 후드려 패서라도 잡았어야 했는데 좋은 말로 달래던 것도 후회된다.

나는 늘 생각한다. 공부는 필요에 의해 스스로 하는 거라고...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은 공부가 자신의 미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들은 공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일요일 연재에 맞춰 써 놓은 글을 퇴고 중인 내 옆에 아들이 살포시 앉아 티브이를 튼다.

넷플리스 피지컬 100 시즌 2

다양한 직업 꾼의 멋진 몸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해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엄마라는 종류의 인간은 그곳에서도 다양한 직업들은 스캔하는 종 특이성을 보인다.

그리고 속으로 그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겠지? 옆에서 같이 티브이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들 얼마나 좋은가? 라며 스스로 위안해 본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답답한 마음에 글이 절로 나오고 하루에 두 번이나 올라오는 글에 독자들이 받을 피로도는 생각지 않고 이렇게 또 쓰고 올린다.(죄송합니다.)


곧 있으며 들이밀 바닥 성적표를 받고 내 멘털을 잘 관리할 방도를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서울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