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사 vs 며느리

후반전

by 송주

며느리는 멍하니 남자들이 절하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자반조기, 탕국. 밥 등을 차례로 나르며 정신을 차려보려 노력하지만 순서는 늘 헷갈린다.

제사라는 의식이 끝나면 며느리의 방전된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리셋된다.


제사 vs 며느리 후반전


상 위에 음식들을 대충 치우고 제사에 참석한 시부모님과 친척 분들의 식사를 차려내기 시작한다.

수육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문어도 질기지 않게 적당한 크기로 썰어낸다. 이때 덜 익은 수육에서 피라도 나오면 며느리는 멘붕에 빠지게 되니 미리 잘 체크해야 한다. 쌈장, 소금, 참기름 등 음식에 곁들일 양념도 내어가고 김치도 총총 썰어 상 위에 올린다.


밥과 국을 아버님부터 놓아드리며 식사가 시작되지만 며느리는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지쳐서 밥이 안 넘어가고

기름 기 가득한 설거지 거리들은 보니

밥이 안 넘어가고

기름 냄새를 하두 맡아

입맛이 없어 밥이 안 넘어가고

밥이 안 넘어가는 이유가 무궁무진 하지만

어른들 앞이라 조금은 먹는다.


설거지를 시작하고 중간중간 친척들을 위한 과일을 깎아 내고 차도 준비한다.


차 마시기까지 전 과정을 수월하게 끝낸 친척들은 제사비가 든 흰 봉투를 며느리에게 주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떠나신다.

며느리 눈꺼풀이 턱까지 내려오는 극한의 피곤을 느끼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봉투를 고이 받아 고맙다고 대답한 후 친척들을 배웅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지만 하나뿐이 며느리편인 동서와 제기를 닦아 제기 함에 넣는다. 동서와 도련님까지 보낸 며느리는 제자리를 못 찾고 엎어져 있는 그릇들, 터져 나갈 것 같은 음식물 쓰레기 통과 재활용 통을 처리하지 못하고 새벽에 잠이 든다.


졌다. 며느리의 완패

제사가 하나도 즐겁지도 보람되지도 않았다.


제사 정리에 지대한 공을 세우지 못한 남편과의 부부 싸움은 제사 후 일상적인 루틴이 되었다.

조상 복을 기대하며 정성을 다 했지만 돌아오는 건 부부싸움과 피곤한 제사 다음 날의 일상뿐이었다.

그렇게 6년가량 제사를 맡아 지냈다.


어느 날 시부모님께서 시골에 새집을 지었다는 명목 하에 제사를 다시 가져가셨다

난 제사를 다시 가져간 명목상 이유 그 이상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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