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며느리가 제사에 못 가면 생기는 일
며느리의 위치
아무리 제사 참석에 최선을 다 한다 해도
못 가는 경우가 있기 마련
나 역시 평일 제사는 퇴근 후 시댁까지 가는 거리가 있어 제사비만 보내고 몇 번 빠졌다.
그리고 시사에 우리 부부가 못 가는 일에 대한 예상치 못 한 전화를 받은 건 퇴근 후 몸살로 심신이 지쳐 누워있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아버님의 전화였다.
시사 날짜를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화장실 갔다 뒷 처리 못한 사람처럼
찝찝하게 전화를 끊었던 지라 아버님의 전화가 내심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아들 내외의 시사 날짜 착오로 인한 불참석이 화가 나신 건지
나한테 화가 나신 건지 모를 사람처럼 내게 언성을 높이 셨다.
아버님이 제사와 며느리에 대해 가시고 계신 가치관이 현재 나의 가치관과 전혀 다르다는 걸 통화 내내 인정하며 고분고분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막판에는 억울함과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버님의 말의 핵심은
•왜 시사 날을 미리 묻지 않고 다른 일정을 잡았느냐 본인은 11월 12일이라고 말한 적 없다.
나와 남편은 그렇게 들었고 날짜에 착오가 있었다면 그건 쌍방 과실이다
•왜 이런 일을 어머니와 상의하지 않고 본인에게 말하냐?
시어머니, 시아버님 중 누구에게 말하든 그게 중요한가? 어머님이 오후에 보통 출근을 하셔서 아버님에 전화한 것이고 다른 이유를 아주 솔직히 말하라면 난 솔직히 어머님 보다 아버님이 더 편하다. 어머님이 더 무섭고 어렵다.
•네 아들의 처가 나중에 너처럼 하면 좋겠냐? 생각을 해 봐라.
내가 미래 며느리한테 뭘 해 줬다고 오라 가라 한단 말인가? 좋고 싫고 논 할 거리가 안된다.
•앞으로 뭐든 어머니께 전화해서 의논해라. 이번에도 어머니께 다시 전화해서 다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라.
어머님과 아예 담쌓고 사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와 상의하는 일이 더 많은데 무슨 일로 수가 틀리신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을 이어가시는 아버님의 말에 하나하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봤자 소용이 없을 듯했다.
이미 작정하고 전화를 하신 아버님께
무슨 말을 한다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네' 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어머니께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에는 소심하게 마음속으로 '노'를 외쳤다.
안 그래도 어머니께 당연히 전화드려 시사 불참에 대해 죄송함을 전하려던 내 마음이 돌아섰다.
하라면 더 하기 싫어 심술부리는 철부지처럼 갑자기 시어머니께 전화가 하기 싫어졌다.
시아버님의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할 말을 안 하고 참은 게 잘한 것일까?
대차게 되받아 치지 못했으니 다시 이 굴레가 계속될 텐데 난 왜 괄호 속의 말들을 내뱉지 못하고 참을 인을 새겼던가..
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남편은 이 일로 아버님께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는 못할 말들을 며느리에게 퍼부으며 몰아세우던 아버님이 한없이 야속했다.
시댁이라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며느리들이 있다.
남편과 사랑해서 결혼하여 아내가 되면 며느리라는 지위를 자동으로 얻게 된다.
며느리의 역할은 남편 집안 가족이 되어 대소사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함은 물론 노동력 또한 제공한다.
여기서 며느리의 노동에 대한 기여도가 부족할 경우 종종 문제가 생기곤 한다.
비단 노동력에 대한 문제 만은 아니다.
음식을 받고 고맙다고 다시 전화하지 않는 경우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되는 것이 있는 경우
(ex 용돈, 식사 등)
전화를 잘 안 하는 경우 등 며느리는 시댁 어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많은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질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역 맘 카페에는 시댁에 전화하는 횟수를 묻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며느리들에게 시댁은 안부 전화 횟수를 공유해야 안심이 될 만큼 어려운 영역인 것이다.
아들들은 이런 질타의 대상에서 대부분
예외가 된다.
예외가 되지 않더라도 같은 강도로 날아오는 시댁의 강펀치에 아들과 며느리가 받는 대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시댁어른들은 짓궂게도 아들보다 좀 더 약한 며느리 쪽을 공격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신 모양이다.
아들에게 못 하실 말들은 또는 안 하실 말들은 며느리에게도 하지 않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여나 며느리가 부족하다 느끼셨더라도 부드럽게 이르셨다면 좋았을 것을...
분명 서로의 입장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늘 제사에 불참한 것도 아닌 내 입장에서 도무지 이 상황은 납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