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슈퍼우먼이었다.
조실부모 하고 우리 외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와 평생 일만 했다.
자식도 여섯이나 낳고 노모도 모시고
구박도 받고 시집살이도 하고 농사일도 하며
평생을 보내다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먼저 가신 외할아버지와 같은 납골당 같은 자리에 모실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부 유골함 자리가 나질 않아 잠시 떨어져 계시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죽어서도 영감 곁에 있어야 하는 사후 현실에 과연 만족하실지 의문이었다.
장례를 치르던 그 날
외할아버지 유골함 앞에서 이모가 울면서 말했다.
"아부지요 이제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행복하게 사시소"
외할머니의 사후 인생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외할머니의 딸인 엄마도 슈퍼 우먼이다.
엄마는 말 그대로 현모양처이다.
아빠의 귀가시간이 몇 시가 됐든 새 밥을 지어 차려 내었다.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살림도 완벽했던 우리 엄마는
나와 동생이 중학생쯤 될 무렵부터 직장도 다니며 6시 기상 9시 취침을 실천하셨다.
하지만 자다가도 아빠의 식사를 차리러 일어났으니 우리 아빠가 행복한 남편인지 우리 엄마가 덜 행복한 아내 인지는 모를 일이다.
나도 슈퍼 우먼인 것 같다.
난 마마걸이었는데 결혼을 한 후 슈퍼우먼이 되어버렸다.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애도 키운다.
그 외 집안에 고장 나는 물건들도 연장을 가져와 고치곤 한다. 수전 교체, 형광등을 led로 교체 등이 내가 해본 집안 수리 중 제일 힘들었고
변기 뚫기, 막힌 세면대 분리하기 등은 귀찮아서 그렇지 식은 죽 먹기다.
둘째 초등학교 때 양성 평등 글짓기 대회에 우리 집 이야기를 써내 교단에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걸 좋아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슈퍼우먼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상황이 만드는 또 다른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