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래 나약한 존재라 태초부터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지하려 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사나운 맹수나 천재지변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올리기 시작한 제의 모습이 오늘의 제사의 시작이다.
예와 효를 국가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이 제사와 만났고 거기에 성리학까지 가세하였다.
죽은 조상이 영생불멸 하여 후손들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는 샤머니즘과 부모에게 대한 효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유교가 신흥 제사 문화를 탄생시켰다.
몇 대 조상의 제사까지 지낼 수 있는가가 그 가문이 로열패밀리 인지 아닌지의 기준이 되었다. 거기에 성리학의 가세는 드디어 오늘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은 음식들로 가문의 건재함을 과시하게 하는 제사의 모습을 완성시켰다.
조선말 돈으로 양반 문서 산 많은 평민과 노비들 역시 보상 심리가 발동하였는지 으리으리한 제사상을 차리며 살아생전 먹어보지도 못했을 진수성찬을 조상님께 바쳤다고 한다.
인조의 계비 자의 대비 복상 기간에 대한 논쟁으로 알려진 예송논쟁만 보더라도 선조들이 보여주기 식 형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이 된다. 물론 예송논쟁 속에는 남인과 서인의 정치적 갈등이 있지만 3년상 vs 1년 상의 대립이 그 당시 상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흘러 흘러 AI가 사람을 능가하게 된 오늘날 제사는
이혼 후 제사 지낼 사람이 없어 제사를 없앤다.
제사 탈출은 지능순
명절날 조상 잘 만난 사람은 공항행 반대의 경우는 제사 지내고 부부싸움
등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문장들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해도 변하지 않는 유교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인, 의, 예, 지, 신
사람이 가져야 당연한 도리는 법 외에 사람과 사람을 지탱해 주고 나를 지켜주는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들로 대변되는 것은 문제다.
음식을 차려 내고 제사를 지내는 수고를 하는 사람은 정해 져 있고 결국 그 수고에 동참하지 못한 가족이 있다면 질타의 대상이 된다.
제사 날짜를 착각한 며느리에 대한 화가 폭발하고
거들지 않는 남편과의 싸움은 제사 후 일상이 되고
그럼에 불구하고 정해진 틀에 매여 변하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답답함이 결국
제사를 조롱의 대상이 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 때는 말이야 제사를 일 년에 ○○번을 지냈고
장을 어떻게 봤고...'
어른들이 들려주는 제사 열전은 언제나 부담이다.
내가 한 고생을 며느리도 해 봐야 한다는 못난 심보가 발동한다면 그건 더 문제다.
제사는 이제 이런저런 가정 불화의 원인 제공 관습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는 날로 재탄생되어야 할 것이다.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기보다는 차 한잔을 마시더라도 얼굴 보고 서로 소식이나 전하며 살라는 큰 뜻의 다른 이름이 제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