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Oct 20. 2024

나는 이기적인 엄마다.

어렵게 쓰는 글

이런 글은 항상 내놓기 어렵다.


얼마 전 한강 작가의 기사를 접했다. 한강 작가는 딩크족이었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강:잔혹한 현실을 볼 때면 아이를 낳는 게 부모의 이기적인 선택은 아닌가 고민했다.


남편 :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그렇다면 한 번 살아보게 한다 해도 죄짓는 일은 아니잖아


한강 : 하지만 아이가 그런 생각에 이를 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모르겠다.


남편: 여름에는 수박 맛이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때 물도 단데 그런 거 다 맛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기 해 주고 싶지 않아.




사실 아이를 낳기 전이 아니라 아이를 낳은 후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저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생이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면서도

고비마다 찾아와 나를 무너뜨렸던 불안을 겪으면서도

시험 때마다 떨리는 가슴을 경험했면서도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좌절했으며

상사로 인해 느낀 모욕감으로 잠자리 들기 전까지 분해 잠들기 힘든 날들을 보냈음에도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고 늘 생각하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세상은 부조리 불평등 불합리가 트리플 세트로 뭉쳐져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없으면 내가 더 불안할까 봐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남들 다 하는 거 내가 못하면 아쉬울 것 같으니

내 욕심에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낳았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 보다 내 세상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나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내 세상 보다 아이의 세상이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아주 오만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는 이 때다 싶은 그 순간을 노린 듯 내 뒤통수를 쳤다.

격동의 한 철을 보내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뜬구름 잡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 대며 신생아 같이 자고 있는 아들은 지켜보는 내 마음을 좌불안석으로 만든다.


내가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면서 내가 낳았다. 그리고 네 인생이니 알아서 잘 살아라라고 말하며 부탁하고 사정도 해 보고 있다.


때론 팔자니 운명이니를 운운하며

애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돈 번다고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일등 아이에 일등 엄마는 나와 무관한 대한민국 교육계 표어다.

숫자로 매겨지는 아이의 능력치에 내가 잘 키우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몹시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국사 검정 시험 감독을 하던 중 1번 문제를 눈으로 풀어보았다.

틀렸다. 1번을 틀리다니...

별것도 아닌데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몸에 힘을 주고 가시를 세우고 있는데 1번을 틀리다니..

그 길로 나는  한국사 능력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난 1번을 틀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은 시험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험들을 쳐내며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며 안쓰러워졌다.

나도 다 겪었으면서...



아들이 뭘 해 먹고살지 걱정이 떠날 날이 없는데 글이나 쓰며 라이킷들에 좋아하는 나를 보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내가 좋아 낳아 놓고 너 스스로 잘 살아 보라고 자꾸 등을 떠밀고 있다. 험한 세상 한가운데서 알아서 부딪히고 깎여보라고 몰아내고 있다.


학력, 돈, 명예 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우가 확연히 다른 세상이다. 선함이 결국 승리한다는 말은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세상에 던져 놓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아이는 늘 내 애간장을 녹인다.



아이가 가야 하는 길은 대신 걸어 줄 수 없다. 자갈이 혀 아픈 발에 굳은살이 박여 무뎌질 때까지 아이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그런 길을 걷게 해서 미안하다. 

낳기만 하면 알아서 지 앞가림할 줄 알았던 무지한 엄마여서 미안하다. 좀 더 제대로 갖추어 낳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자꾸 질 같은 잔소리 해 대서 미안하다.

난 참 이기적인 엄마다.


내 걱정과 상관없이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다. 자갈길 도중에 잠시 보이는 꽃들을 보며 사는 것이 인생이겠지..


터널 속에서 세상 쓴맛 단맛을 다 보겠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길 빌 뿐이다.



늘 생각하던 것을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뿜어내듯 용기 내서 써 본다. 쓰고 나니 그래도 한결 가볍다.

매거진의 이전글 AI를 믿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