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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Oct 31. 2024

픽션과 논픽션 사이 3

그 후

"정우 어떻게 지내는지 안 궁금하나?"

"정우 오빠 어떻게 지내는데요?"

"궁금하면 네가 직접 전화해 봐."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잠수 이별

난 정우의 전화번호도 그대로 남겨 놓았고 정우가 사준 선물들도 그대로 방 안에 두었다. 그러고 보니 정우의 어떤 흔적 어떤 것도 지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리적 양다리를 걸칠 생각이었나...

그리고 얼마 후 정우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냈나?"

"응"

"우리 헤어지자는 말이 오간 것도 아니고 내 생각에는 우리가 헤어진 게 아닌 것 같다."

참으로 정우스러운 표현이었다. 다시 만나자는 말을 저런 식으로 하는 남자 그게 바로 정우였다.

소개팅도 번번이 실패하고 탱고도 재미가 없어질 무렵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정우의 개떡 같은 소리를 들으니 초긍정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정우가 다시 연락이 오다니 정우가 내 솔메이트가 맞는구나 하며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해석을 나 홀로 했던 거다.


드물었지만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는 친구도 나타났다. 또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게 되면서 모두의 관심사가 결혼으로 모아 지기 시작했다.


나는 꽤 헌신적이고 보수적인 여자였기에 정우 아니면 이제 영원히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과거 있는 여자가 되어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정적 상상을 하곤 했었다. 

춘향이가 사또 수청을 안 들던 시대의 여성상을 고수하던 어른 밑에서 배운 것은 여자는 이러이러하면 끝일 난다였다.

내가 정우와 사귈 때 우리 다툼의 주원인은 내 유교걸 마인드였다. 결국 나는 정우를 허락했지만 이제 더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나에게 탱고는 예술이었고  본래 성품은 쫄보 유교걸이었다. 보수적이고 촌빨 날리는 가치관이 평생 내 인생을 안전하게 만들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내고 보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정우와 다시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둘 다 사회생활을 하였기에 주말 데이트를 하며 전 보다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다투는 횟수도 줄었다. 그리고 나이 탓인지 중간에 이별을 경험한 탓인지 전보다 원숙한 연애를 하였다.

그렇게 일 년 간 더 사귀다 드디어 결혼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고작 내 나이 26 살

우리의 연애가 길었던 것을 아는 많은 사람들 역시 당연히 정우와 내가 이때쯤 결혼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동경했다. 멋진 웨딩촬영을 하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웨딩샵도 골라 놓았고 신혼 여행지도 정해 놨다.


이제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아 아름다운 봄의 신부가 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시댁에 대한 학습된 효과는 존재했다. 고생하던 엄마의 삶과 시댁 때문에 사니 못 사니 하는 며느리들의 절규 섞인 이야기들은 결혼 전부터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상견례 전 정우 부모님을 몇 번 뵌 적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마땅한 내 역할을 찾지 못해 당황했고 정우 부모님은 내게 어렵기만 했다.


어느 날 정우의 부모님과 뷔페에 간 적이 다.

나는 디저트로 과일과 쿠키를 담기 위해 엄청난 고심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뷔페는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조금씩 가져와 먹으면 되는 곳이지만 내 것만 접시에 담아 가려니  배웠다 할까 봐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가득 담아 갔다가 마음에 안 들어한다면 더 미안하고 민망할 것 같은 걱정에 집게를 들어다 놨다 여러 번 반복했다.

결국 고심 끝 내 선택은 내가 먹을 정도의 과일과 쿠키 담아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정우 엄마내 접시를 보고 바로 한 소리를 하였다. 

"너는 네 것만 떠 오나."

내가 며느리 감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 보지도 않은 예비 며느리가 가져온 디저트에 한 소리를 날리는 정우 엄마가 무서웠다. 그리고  나와는 분명 맞지 않는 사람 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던 내 디저트는 결국 쓴소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로 접시를 채웠어도 내 몫의 디저트만 담아 갔어도 결말이 정해져 있는 듯 했다.


드디어 상견례 날짜가 잡혔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되고 떨렸다.

티브이나 매체에서 보면 상견례 후 더 사이가 나빠지거나 아예 파투가 났다는 이야기를 접했던 지라 더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현실이 된 건 상견례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상견례 후 우리의 결혼은 파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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