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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Nov 06. 2024

픽션과 논픽션 사이 6

사랑, 정 그리고 현실

"결혼 날 잡으러 왔어요."


나는 정우와 내 생년월일을 말했고 심장이 뛰고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결혼 날 못 잡아 주겠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결혼하는 건 겨울에 나무 심겠다는 소리와 같아요."

이래서 점집이나 철학관이 무서운 거였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때부터 나는 봇물 터지듯 하소연을 쏟아 냈다.

마음이 급했고 누군가의 옷자락을 잡고라도 눈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일이 안 풀릴 때 우리는 샤머니즘에 의존한다. 나도 그랬다. 이래서 사기꾼이 생기고 점집들이 망하지 않고 유수의 세월 동안 건재 한 것이다.

한바탕 울고 점집을 나왔다.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었는데 결혼운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결혼을 할 수는 있다고 하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상대가 정우가 아니라도 나는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믿지도 않을 말에 조금 안도했다.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갖지 못하는 것을 갈망하듯 결혼에 목을 매는 불쌍한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절망감에 빠진 나는 나날이 우울해졌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모두 내 이야기를 가십거리 삼아 입에 올릴 것만 같았다. 그 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며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침을 맞으러 다녀도 보고 목 뒤에 어혈을 푼다는 명목으로 사혈도 해 보았다. 차도가 없었다.


그 사이 정우의 집에서는 새엄마 딸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외에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정우는 내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는 남자였다. 정우는 아는 게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정우가 체득한 생존 본능이라 생각했다.

정우는 알아도, 몰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에 그냥 눈,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을 택한 것이다.

나처럼 이것저것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정우였다.


두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았다.

두통의 원인을 찾으려 내과검진을 하였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신경 정신과를 가게 되었다.

명은 공황과 우울이었다.

밤마다 꿈을 꿨다.

하얀 수의들이 널려 있는 가게 안에 앉아 있거나

끝도 없는 미로 속을 헤매다 심장이 요동치는 상태로 깨어나곤 했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많은 밤을 보냈다.


나는 결국 정우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정우가 가장 힘들 때 나는 정우를 끊어냈다.

정우 역시 결혼이 틀어지고 상처만 남았고 결국  합의 이별을 승낙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사랑은 이상적인 가치 일뿐 현실에서는 단지 읊어대는 타령에 지나지 않는다.


정이 사랑 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을 준비한 것도 사실이었다.

정에 이끌려 의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한다. 나는 아마도 사랑의 결실은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명제를 위해 달려온 것 같았다. 사랑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사랑인지 정인지도 모를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결혼을 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과 정

단어만 다를 뿐 마음의 깊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 남자에게 쏟아냈다. 하지만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그에 상응하는 어떤 에너지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세상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이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 혼자 살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라지고 싶은 그 마음을 몽땅 짊어지고 조용한 산사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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