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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Nov 29. 2024

가오 애벌레? 번데기?

집에 그들이 두 명

옷은 왜 사도 사도 입을 게 없는지 모르겠다.

고 1 , 중2 두 아들들도 마찬가지인지 얼마 전 둘째가 버릴 거라며 휘몰듯 거실로 옷을 한가득 가져왔다.

키가 작아 늘 걱정이었는데 둘째가 요 근래 쑥 크더니 이제 나 보다 키가 커졌다. 그리고 입던 옷들이 당연히 작아졌다.

팔이 좀 짧아도 기장이 좀 짧아도 입으면 되지 하는 내 생각과는 반대로 모양 빠져 못 입겠소를 시전 하며 옷을 내놓는 바람에 집이 시장 난전이 되었다.

얼마 입지도 않은 브랜드 옷들이 옷 수거 함으로 들어간다 생각하니 애미는 아까워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올 겨울만 대충 입어라 부탁했다.

곧장 "잼민이(초등학생)  같은 옷을 어떻게 입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겨울 내내 갑갑한 게 싫다며 헐벗고 다니느라 몇 번 입지도 못한 패딩도 꺼내놨다. 패딩 사줄 돈 없으니 올 겨울만 입으라고 나는 또 부탁했다.

"이거 입으면 가오충 서 안돼."

협상 실패였다. 사춘기와는 협상이 잘 안 된다. 둘째는 돈으로 구슬려도 철옹성을 쌓는 일이 잦아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 주는 비굴한 센스가 필요하다.


가오충이라는 말이 작은 아들이 입에서 나오자 나는 과거의 기억을 몇 장면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도 하기 싫은 큰 아들의 중2시절

아들이 지금 작은 아들 나이 때 중2병이 제대로 왔다.  큰 아들은 가오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춘기 소년이었다.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 머리 드라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들과의 충돌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무겁게 만들기 좋은 이슈였다. (다행히 지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답니다. 지가 달리기가 빨라서 그렇답니다. 깊은 빡침이 느껴지시나요?)

옷 브랜드 그런 건 기본이었다.

나이키 아니면 입으려 들지 않았다. 물론 남들 다 입는 나이키 그 정도는 기본이지 하는 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학생은 교복 몇 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지존 꼰대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큰아들은 본인이 가오충이 아니라고 언제나 강조하곤 다.

어느 날 나는 학교 가기 전 때를 빼고 광을 내는 아들의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를 던졌다.

"학교에서 누가 가오충인지 모르면 네가 바로 가오충인 거다." 

나는 화투 판에서 누가 호군지 모르면 네가 호구다.

뭐 이런 느낌으로 오늘 한번 붙어 보자는 식의 조롱 섞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말속에는 어깨에 힘을 뺄 것과 머리 드라이 그만할 것 그리고 옷 좀 대충 입고 다녀라 하는 속 터지는 엄마 좀 살려 달라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엄마! 엄마는 가오충이 뭔지 몰라? 형광 바지에 검은 쫄티 이런 게 가오충야."

아들은 발끈했고 씩씩 거리며 학교에 갔다.

아들이 말하는 가오충

그 후 나는 아들이 발끈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오 잡는다는 것을 일종의 폼 잡는다는 뜻 정도로 생각했던 나와 달리 가오에 충이 붙어 비겁하고 야비한 등의 온갖 자존심 구겨지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오+충이 합쳐져 만들어진 인터넷 속어.


과거: 멋 부리고 어깨 힘주며 강한 척하는 사람

현재 :가오의 이미지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군가 같이 있어야만 가오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강한 척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당시 큰 아들의 행태가 가오충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오 애벌레, 가오 번데기쯤으로 보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이 약이라고 지금은 충 빼고 가오만 남았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뭐 이런 느낌...


세월이 조금 흘러 작은 아들이 중 2가 되었다.

짜리 몽땅 그 자체인 아들이 와이드 팬츠를 사 달라고 했다. 끌고 다니고, 덮고 다니고자 함인지..


흠... 그래도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몫이라 생각하고 무신사에서 마음에 든다고 하는 펄럭이는 와이드 팬츠를 주문해 주었다. 덤으로 티도 두벌이나 주문해 주었다. 

옷이 도착하자 신이 난 작은 아들이 옷장 속에 있는 작은 옷들을 아주 조금 작아진 옷들까지도 모조리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곤충이 허물을 벗듯 기존에 있던 옷들을 버리면서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작은 아들도 애벌레나 번데기 과였던 것인가..


형제는 용감했다 가 아니라 형제는 어미 등골을 빼먹었다.


나는 아들이 내놓은 옷들을 분리해서 거의 거저의 가격으로 당근에 내놓았다. 글을 띄우자마자 사고자 하는 분들의 알림에 급 후회가 밀려왔다.

가격을 더 높일걸...

역시 나는 간사하고 치사한 소인이다.


그리고 몇 벌은 추운 날 반려견 산책  입으려 내 옷장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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