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심하게 비워내기

버리기의 쓸모

by 송주

내가 하는 학원의 다용도실은 매우 좁다. 원래 용도는 다용도 실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곳은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베란다처럼 길다. 공간의 효용을 따져 본다면 길이가 길기만 하고 좁은 폭의 장소는 딱히 쓸모를 찾기 힘듦이 분명하다.

그 좁은 공간에 비품들을 적재해 놓았다. 하지만 휴지 한 묶음만 놓여도 마른 여자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더 좁아져 버린다.

몸을 돌리기도 힘들어 직진으로 갔다 그대로 후진을 해야 나올 수 있다. 몸을 조금이라도 비틀었다가는 켜켜이 쌓인 먼지로 온몸이 도배가 될 수도 있다. 최대한 먼지가 묻지 않도록 나온다고 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눌러앉은 먼지들이 묻게 된다. 그럼에도 최대한 몸을 움츠려 조심조심 뒷걸음으로 나오게 되는 곳이 그곳이다.


연말 학원에 대대적 시설 정비가 이루어졌다.

도배를 하게 된 것이다.

누가 그랬다. 살면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도배라고...

도배 후 학원은 벽을 제외한 모든 곳이 전보다 더 더러워졌다.

선생님들 모두 휴일 중 하루를 학원 청소에 반납했다.

(전 원장 아니고요. 팀장쯤...)

학원에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를 물건들이 많았다. 균형 잃은 의자부터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길까 박아두고 쌓아 둔 많은 것들... 보고 그냥 지나쳤던 많은 물건들을 버리고

폐기물 업체에 수거를 요청했다.



주말이 지나 출근을 했다.

보조 선생님께서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장소 바로 다용도실이 생각났다.

그곳 물건들을 지금 치우지 않는다면 다시 몇 년 이상은 봉인될 것이 뻔했다.

나는 좁디좁은 그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언제부터 그곳에 박혀 있었는지 모를 물건 몇 개를 낑낑 거리며 끄집어냈다.

이제 정말 다 버려진 것 같았다.


물건을 버리는 것도 만만찮은 품이 들었다.

뭔가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버릴 이유보다 못 버릴 이유를 찾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다소 이분법적이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버릴 것과 쓸 것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쓸 것처럼 버릴 것에 그렇게 미련을 둔다.


그것이 비단 물건뿐만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버릴 때도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오죽할까 싶다.

40 중반의 터널의 지나오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사람 마음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그래서 관계는 깊어서도 얕아서도 안된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나는 낯가림이 많지만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적 외향형이라 쉽게 다가오기 편한 스타일이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 참 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늘 관계를 하기 위한 방어적 밀당은 어려웠다. 나도 상처받지 않아야 그 관계는 잘 유지되기 때문에 조금의 경계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허물없이 각자의 집 숟가락 개수도 알 만큼의 뻔한 사이라도 상황에 따라 크고 작게 상처받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떠올린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 같던 저 말이 불혹을 지나며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명제처럼 배워오고 체득한다.

하지만 어느 지점 이후로 때론 혼자가 무한히 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학원의 많은 물건들을 버리고 또 버렸다.

그리고 나는 정리되지 않은 또는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많은 관계 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관계는 가끔 머릿속의 생각을 많아지게 만든다. 때론 쿨하지 못해 곱씹게 되고 때론 곱씹을 거리를 주게 되기도 한다.

때론 사소한 어투에도 고민하게 되고 일상적 대화에서도 아픈 곳이 툭 건드려져 서운해지기도 한다.

또 너무 생각하다 보면 어려워지고 반대의 경우는 가벼운 사람이 된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고 나는 카카오톡을 열었다.

친구 목록을 살펴봤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삭제 버튼을 눌렀다. 먼지 쌓인 묵은 물건처럼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아직 내 폰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연락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이었다.

혹시나 내게 이 사람이 연락할 일이 있지 않을까? 혹은 내가 연락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짧은 망설임이 내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물건을 버릴 때와 꽤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게 삭제 버튼을 눌렀다.

관계에서 파생되어 오는 부차적 문제들을 원천 봉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잘 다스리려면 적당히 내 관심 밖에 두었다 가져오기를 반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적당한 정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버리고 정리한 후

다시 무언가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생각이든

어떤 식으로든 언제나 다시 채워졌고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씩 리셋해보는 과정..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무심하게 비워내기..


여러 모로 잘 버리는 사람 되어 보자.




*잠시 비우고 버리러 다녀올게요.

화장실 아니고요.

그다음에 새로운 연재로 찾아뵐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