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부모님의 사랑 가득한 김장 김치를 먹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시사 날 특수 임무 배추 얻어가기
지난 7일 함안에 있는 시댁에 시사를 지내러 갔다.
시사는 특정 때에 맞춰 집안 모든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시댁은 보통 음력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시사를 지낸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시사 날짜가 12월로 평년보다 늦은 편이었다. 밖에서 제를 지내기에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푸근했다. 시사를 지낼 때면 으레 얻어 가는 밭작물이 있는데 바로 배추이다. 김장철 필수 야채인 배추는 이 기간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시사 보다 배추를 얻어가는 임무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내 시어른들은 부산에 사시다가 아버님이 퇴직하신 후 고향인 함안으로 돌아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다. 그렇다고 농사를 전업으로 하시는 건 아니고 집터 여기저기에 땅을 일구어 식구들 먹을 정도로만 여러 가지 농작물을 기르신다. 고추, 깻잎은 기본이고 사과나무도 있어 지난여름에는 사과를 따 와서 맛있게 먹었다. 추석 명절에는 동서와 고추를 따와 집에서 맛있게 먹었고 단감도 얻어봐 잘 먹었다. 시부모님께서는 시댁집 입구 밭에 배추를 가득 심어 놓으셨다. 배추는 추위에 약해 얼어버리기 쉽다며 농사용 보온 덮개로 잘 덮어 놓으셨다. 이불 같은 덮개를 걷으니 초록초록 잎사귀의 배추들이 일렬로 나 있었다. 올해는 배추 농사가 풍년이었다. 처음 시부모님께서 밭농사를 지을 때만 해도 작물들이 너무 작고 알이 없어 초보 농사꾼 티가 났었다. 몇 해 지난 지금은 배추만 봐도 그 사이 얼마나 마음을 쏟아부으셨을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농사를 잘 지으신다.
"동서, 배추 잎 덮고 자도 되겠어요."
커다란 배추를 보고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님은 묵직하게 알이 꽉 찬 배추를 두 고랑이나 뽑아 주셨다. 나와 동서는 큰 비닐에 배추를 옮겨 담았다. 얼마나 무거운지 허리가 뻐근할 정도였다. 한 봉지에 열개 씩 두 봉지를 채웠다. 내 힘으로는 절대 못 들 무게라 남편이 이고 차까지 실어 날랐다. 동서와 도련님은 둘이 끙끙대며 배추를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반대로 50살인 남편이 그 무거움 배추 봉지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메는 걸 보니 든든하긴 했다.
시댁에서 받은 배추의 다음 이동 장소는 친정
시사를 다 마친 후 배추를 실은 우리는 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올해도 친정 엄마가 김치를 담가 주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올여름 새 김치가 먹고 싶어 직접 김장을 해 본 적이 있다. 배추를 절이는 것도 양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춧가루, 액젓, 간 마늘 등 들어가는 재료도 많았지만 내가 만든 김치는 정성에 비해 맛이 없었다. 아직 김장은 엄마 손을 빌려야 될 것 같다 생각했다. 솔직히 영원히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
김치를 가져다 드린 일요일 엄마는 바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다음날인 월요일에 김장을 다 했다며 가지러 오라고 했다. 엄마는 음식 솜씨도 일품이지만 손도 빠르다. 배추 20 포기를 며칠 두고 볼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김장을 위해 얼마나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을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김치통에 곱게 담긴 엄마의 김장 김치는 때깔만 봐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마지막 수육 삶기는 내 차례
싱싱한 김장 김치에 수육이 빠질 수 없다. 올해 나는 수육용 고기 대신 두툼한 오겹살을 샀다. 김치는 못 담그지만 수육은 제사를 지내면서 많이 해 본 지라 자신 있었다.
핏물을 뺀 고기를 냄비에 넣고 고기가 잠기도록 물을 붓는다. 된장 한 스푼, 커피 가루, 월계수 잎, 파, 양파, 마늘을 넣고 끓여 익히면 완성이다. 김치와 수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지만 김장 김치와는 특히 더 그렇다. 수육 고기가 아닌 두껍게 잘린 오겹살은 오래 삶지 않아도 되니 금방 밥상 위에 올릴 수 있어 편하다. 맛있게 삶아진 수육과 김장 김치에 아들들도 예외 없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실패가 없는 메뉴가 김장김치에 수육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 사랑 담긴 김장 김치
시댁에서는 배추를 얻고 엄마의 수고를 얻어 올해도 김치 냉장고가 새 김치로 채워졌다. 자식을 위해 밭작물을 기르고, 양념을 치대 무쳐 내는 수고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통속에 먹기 좋게 담아 주신 정성 가득한 김치를 보니 이 호사를 영원히 누리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도 든다. 하지만 언제까지 엄마의 손길에 기대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이제 그 정성을 내가 베워야 할 차례라 생각하며 내년에는 나도 김치 담그기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