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남 모르게 아프다.
크리스마스 주간
중년의 직장인 나는 크리스마스의 설렘보다는 하루 쉴 수 있다는 현실적인 기쁨에 더 가슴이 뛰고 있었다. 3일만 출근하면 하루 쉴 수 있었다.
그 주 월요일
남편은 연말 모임이 있다고 했다. 무급 연차가 남아 이날 연차를 냈고 4시 반에 약속이 잡혔다고 했다. 느낌이 싸했다.
어른의 술자리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와 다른 시간으로 움직인다. 일찍 시작했다고 일찍 파하는 법이 드물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다.
남편의 특별한 술 주정은 술에 취한 후 내게 전화를 걸어 옆 사람과 통화를 하게 만드는 거였다.
나는 남편과 살며 일면식도 없는 많은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안~~ 녕하세요.. 덕화예요." 라며 배우 이덕화 흉내를 내시는 부장님부터 우리 남편이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여직원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해 봤다.
남편 얼굴을 봐서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다음에 기회 있으며 봬요."라며 웃으며 마무리하곤 하지만 달갑지 않은 남편의 술버릇이었다. 그 전화를 받는다는 건 남편이 이미 만취 인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남편에게 마취총을 쏘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대화 상대가 나와 친한 선배였다는 거다. "송주야~~ 누구 때문에 고생 많다."로 시작하는 선배와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 나눈 후 전화 통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술자리 내내 조용하던 남편은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눈깔이 동태눈이었다. 남편은 만취 상태로 발을 질질 끌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워킹데드의 좀비를 보는 듯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내 다음 행동이 정해졌다. 내가 있는 거실까지 알코올 냄새가 분자 단위라도 새어 나오지 못하게 안방 문을 닫는 것이었다. 남편이 어떤 모습으로 꼬꾸라졌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불을 안 덮고 자 입이 돌아가도 내 알바가 아니란 말이다.
잠시 평온했고 곧 아들이 들어왔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은 학원에서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하던 중 근육이 쫙 찢어지는 듯 통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워낙에 자주 다치는 녀석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간식을 내어주고 다시 누웠다.
간식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간 아들이 끙끙 거리며 기어서 나왔다. 얘도 워킹데드 1화의 좀비 같았다.
술 먹은 지 아빠를 닮아가는 건지 어째 모양새가 비슷했다.
"엄마 나 너무 아파. 병원 가자. 흑흑흑"
아들은 둔부가 너무 아프다며 걷을 수 없다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을 깨우러 안방에 들어갔다. 남편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몸이 침대에 반만 걸린 채로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깨워 일어난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좀비 둘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널브러진 남편을 널브러진 채 그대로 두고 옷을 챙겨 입었다.
아픈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에는 택시가 낫지 싶어 택시를 불렀다. 한데 이 아들놈이 걷지를 못하겠다며 나무늘보 보다 더 느리게 이동하는 게 아닌가..
몸은 호리 하지만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아들을 부축해 가려니 진이 빠졌다. 결국 나는 아파트에 비치된 카트를 떠올렸다.
지하 1층 무거운 짐을 싣으라고 비치된 카트에 무거운 아들을 태웠다. 카트에 탄 아들의 몸은 엉덩이는 카트 안에 다리는 카트 밖으로 삐져나온 누가 봐도 설명이 필요한 자세였다. 정말 누가 볼까 겁이 났다. 아들을 밀고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와 겨우 택시에 올랐다.
응급실 입구에 내려 휠체어를 빌려 나가 다시 아들을 태웠다. X ray 촬영을 위한 환복부터 촬영실로 가는 것까지 10분이면 될 일이 30분 이상은 걸렸다. 끙끙거렸던 아들 녀석의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이성의 끈이 잠시 가출했다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각자의 아픔이 있다고 남들은 말한다. 하지만 남들은 모른다.
그날 새벽
카트기에 해괴한 모습을 한 고 2 남자애를 싣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간 그녀의 사연을 말이다.
나의 아픔은 남편과 사춘기 아들의 엄살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거였다. 그리고 그날 나 역시 수면 부족으로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좀비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모른다. 별들은 아프지만 빛나기라도 하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