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예쁜 손가락을 사랑한 죄로
이 글은 가든 작가의 <상극의 희극> 중 '가늘고 긴 손가락을 사랑한 죄로'를 읽고 영감을 얻어 쓴 실화입니다.
이성을 볼 때 호감도를 상승시키는 신체 부위는 손이었다. (개인적 취향입니다.)
BTS뷔처럼 길고 예쁜 손을 가진 남자가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하긴 BTS뷔 정도의 비주얼이라면 손이 돌아가 있어도 상관없긴 하겠지만 여하튼 나는 손이 예쁜 남자가 좋았다.
남편은 남자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백인 같은 피부에 손이 유독 예쁘고 고왔다. 보통 하얀 남자들은 미소년처럼 곱상한 경우가 많지만 남편은 반대였다. 하지만 손만은 길고, 희고, 예뻤으니 섬섬옥수가 따로 없었다.
사실 나는 손가락이 못생겼다. 특히 엄지가 우렁 손톱이다. 학창 시절, 대학 시절 손가락을 올리는 제로 게임을 할 때마다 나는 게임 시작 전 짧게라도 내 우렁손톱을 커밍아웃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놀라거나 신기해하는 눈빛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심리였을까? 손이 예쁜 남자가 더 매력 있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서 펜대만 굴릴 것 같은 남편의 손은 화이트 칼라에 대한 나의 내적 동경을 자극하기에 적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A회사 사원으로 취업했고 사무실 책상이 그의 업무 터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예쁜 손이 펜대를 굴리는데만 쓰일 줄은 결혼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얗고 예쁜 손가락을 가진 남편은 그 예쁜 손처럼 철저한 문인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나는 문인이라 그런 건 못해."
남편은 가사일 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소한 물건을 고치는 일도 문인 드립을 치며 하지 않으려 했다. 마지못해 한다 해도 이해하기 힘든 처리 속도와 미숙함을 보였다. 일이 하기 싫어 고도의 전략을 세우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여하튼 남편은 회사 업무에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도 집안일에는 일머리 회로가 정지된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금이야 옥이야 온실의 화초 같은 성장기를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 반대라 표현해야 맞을 정도의 독고다이 인생이었다. 결국 자라온 환경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환경 결정론에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인간의 의지는 환경을 앞설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문고리 고치는 일부터 막힌 배수관을 뚫는 것까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느니 내가 팔을 걷어 부치는 쪽을 택했다. 이것저것 만지고 고치다 보니 내가 이런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재능을 발견하게 해 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내 팔자를 내가 더 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얼마 전 안방 변기가 막혔다. 원인은 필시 둘째라 직감했지만 이 녀석도 누굴 담아 본인이 싸지른 응가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지척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아빠 변기 막혔어."
남편의 망측한 대답에 나는 굳게 입술을 깨물고 결의를 다졌다. 결혼 18년 차, 나도 당당하게 개겨 보기로 했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내 눈앞에 응가물이 흘러넘친다 해도 이번만큼은 못한다고 내 뺄 작정을 단단히 했다. 속이 터진다고 뚫어뻥을 내 손으로 잡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잠시 후 안방 화장실에서 철렁 대는 물소리와 둔탁한 고무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물과 함께 시원하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내게 다가와 자기가 막힌 변기를 뚫었다며 자랑을 했다. 그건 칭찬을 해 달라는 말이 분명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잘했네" 해 주었다.
하얗고 예쁜 손가락을 가진 남편은 변기를 뚫은 작은 성공을 내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남편의 하얗고 예쁜 손가락도 세월을 따라 살크업 되었다. 한번 예쁜 손가락도 영원히 예쁜 건 아니었다. 예쁜 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예쁜 건 지나가고 남는 건 현실이란 사실을 꼭 명심하자!
하지만 나 역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 손가락에 반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이제 물릴 수도 없고 예쁘게 살찐 하얀 손가락을 잘 조련하는 일이 일생의 과제로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