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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19. 2023

그저 그렇게 있다

자식들을 소개 합니다.

내게는 자식이 셋이 있다. 사람자식 두 명에 반려견 크림이 이렇게 셋이다.

지금부터 그들을 1호, 2호, 크림이 이렇게 칭한다.


1호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다.

첫 정이 무섭다고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1호를 보고 자면 내가 낳은 자식이 저만큼 자랐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미운짓을 해도 1호의 아기 때를 생각하면 금세 마음이 풀리곤 한다. 아직도 자고 있는 1호의 발가락을 꼭 깨물어 줄 정도로 사랑스럽다 하면 믿을까? 다 큰 아이가 아직도 아기 같이 느껴지니 참 엄마는 어쩔 수가 없는 존잰가보다.

하지만 머리가 점점 굵어지는 1호는 내 마음과 다르게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곤 한다.

가끔 1호는 돈만 있으면 나 없이도 잘 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운함 안도감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이 섞여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를 모호함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1호는 돈이 없다.



2호는 중학생이다.

조근조근 온갖 학교 생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자칭 마마보이 2호는 나름의 사춘기 멋 부리기에 한창이다. 문제는 그 멋을 반팔을 입으면 뿜어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 한겨울 엄동설한에.. 흥보도 기가 막힐 2호의 안쓰러운 반팔 패션은 보는 사람마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2호의 반팔 패션 때문에 친분이 있는 동네 사람들은 오며 가며 나를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아들 안 춥데요?"

"호호호 그러게요. 제 말을 안 듣네요.."

라고 대답하고 돌아서지만 속으로 한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놈의 Shake it!  입지도 않는 옷을 싸잡아 버릿뿌까?'


잔소리해서 말을 들는다면 이 세상에 말 안 듣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학창 시절 내복은 내 평생에 없을 의복이라 생각하였으며 스타킹조차 입지 않고 겨울 추위를 버틴 몸이라 2호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같기도 하다.

"그렇게 다니다 뼈에 바람 들어간다.". "늙어서 고생한다."라는 어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가볍게 무시해 주었던 나는 정말로 뼈에 바람이라도 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성한데 없다. 혹시 그 원인이 어른들 말 안 듣고 헐벗고 다녀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사람의 기초 체온이 1도 높아지면 천하무적이 된다는데 난 높여도 모자랄 중한 기초 체온을 낮추고 다녔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맨 살에 엄동설한 찬바람을 맞으니 살이 허옇게 일어나고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의 2호가 참 빈해 보인다. 그냥 어 갈려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 

2호를 불러 앉혀 물었다.


"2호야 혹시 컨셉이 거지야?"


셋째 크림이는 1호, 2호와 DNA구조 자체가 다른 종이다. 하지만 단연코 내 말을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듣는다.

반려견은 주인을 닮는다더니 어쩜 나를 그리 쏙 닮았는지 선한 외모에 사교성이 유명 셀럽 뺨치는 수준이라 짖는 법이 없고 견종을 가려 사귀지도 않는다. 이넘의 꼬리는 초고속 모터를 달았는지 빠른 속도로 흔들어 되니  안 예쁠 수가 없고 그와 더불어 사람에게도 적대적이지 않다.


밥은 주는 대로 잘 먹고 , 옷을 입혀주는 대로 그냥 입는다. 가리거나 투정 부리는 법이 없으며 잘 시간이 되면 알아서 곁에 와서 자고 해가 뜨면 혀로 자동 모닝 세수까지 시켜준다.

이뿐만 아니라 크림이의 시선 끝에는 항상 내가 있고 그럴 때마다 난 크림이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무언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건 참 소중한 경험이고 그 대상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밀착된다.

나도 데리고가 1


주고 그리고 받는 건 인간사 모든 관계의 균형 같은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이 깨지며 그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다.

1호, 2호는 내게 엄마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그들은 신을 대신 할 만큼의 절대적 존재로 나를 만들어 주었으니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 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크림이는 주고받는 관계의 균형에서 예외적 존재다.

조건이라는 단어는 반려견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내가 천하의 악인 일지라도 반려견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반려견에는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러니 반려견과 견주 사이의 주고 받기 균형은 이미 없다.

최애 드라마였던 '미스터 선샤인'의 구동매 대사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저 있습니다."

반려견이 이래서 힘들다. 늘 나만 보고 그저 있으니 짠하고 안쓰럽다. 내가 뭐라고...

오늘도 출근하는 나를 그저 바라보는 크림이를 혼자 두고 나온다. 늘 겪는 출근길 이별임에도 현관 중문 너머로 내가 나가는 걸 빤히 쳐다본다. 출근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늘 같은 모습으로 그저 그렇게 있다.

나도 데리고 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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