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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24. 2023

개는 솔직하다.

감정 표현에 진심인 반려견

긴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특별히 어려운 인생을 산 것도 아니지만

남들 해보는 거 다 하고 살아봐서

누울 자리 정도는 알고 행동하는 중년이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실에서 보는 다양한 광경들이 옛날과 많이 다르다고 느끼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옛날 모습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환상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수업에 임한다.


시내 모고등학교에 태블릿 피씨가 학생당 하나씩  보급되었다는 정도가 내게 놀라운 일이었을  뿐 뭔가를 새로 알게 됨으로 생기는 놀랄 만할 일은 

딱히 없는 그냥저냥 평범한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들이 표현하는 감정들은 말로만 듣던 걸 실제로 경험했을 때 느끼는 놀라움을 내게 선사했다.

이 네발 달린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감정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당연히 매체와 교육을 통해 동물들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려견을 기르며 근접에서 보는 그들의 행동과 표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꼬리를 흔들며 뒤집어 눕는 건 반가움

퇴근 후 내차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월패드에서 전해 지는 순간 대기 자세를 취한 크림이는 현관문 누르는 소리에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다.

크림이와 퇴근 후 재회는 내게도 물론 반가움이다.

내가 돌아와 준 것에 대한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크림이와 난 출근 시 이별이 아쉬웠던 만큼 퇴근 후 재회는 진심 그 자체다.


엄마 왜 이제 왔어


바들바들 떨며 자꾸 안아달라 조르는 건 불안함

크림이는 온순한 성격의 개라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보이는 법이 없다.

언제나 쾌활한 크림이가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 앞에서 만큼은 다른 모습이다.

크림이의 불안 게이지는 동물병원 입구에서 이미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곳이 병원 인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 냄새로 아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진료 대기 시간에도 노는 법이 없고 안아 달라 조른다.

진료대 위의 크림이는 의사 선생님과 눈을 맞추지 않고 뒤 돌아 자기를 구해달라는 신호로 내 가슴팍을 긁어대며 안아달라고 다시 조르기를 시작한다.

병원이 무서운 곳임을 용케도 아는 개는 비단 크림이 뿐만은 아니다. 개들에게도 병원은 달갑지 않은 곳임이 분명하다.


손을 툭툭 치는 건 만져달라는 요구

크림인 내가 책을 볼 때도 나를 그냥 두는 법이 없다.

그래서 크림이를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곳에서 잠들기 바라며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잠시 내가 손을 멈추는 그 순간 앞발로 내 을 툭툭 친다. 다시 쓰다듬어 달라는 이다.

크림이의 요구에 늘 그렇듯 다시 응한다.

글에 통 관심이 없는 크림이 때문에 오늘은 여기 까지다. 책 덮자.

책 보지 말고 쓰담쓰담 해 주세요


꼬리를 흔들며 뱅글뱅글 돌며 짖는 건 즐거움

사람이 즐거울 때 환하게 웃는 것처럼 크림이도 밝게 웃는 표정으로 기분 좋은 감정을 표현한다.

표정뿐만 아니라 이때는 웅웅 거리며 자신만의 언어로 말도 하기 시작한다. 옆에 와서 내게 몸을 비비며 돌기도 하고 웅웅 거리며 말을 하기도 하면서 "나 지금 기분이 좋아요"를 표현하는 크림이로 인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나 건들지 말아 주세요 피곤함

사람의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정도다.

난 역시 8시간이 낮시간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내 생체 리듬을 정상화시키기에 적당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견이든 사람이든 수면은 필수불가결한 건강한 삶의 조건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개의 수면시간은 생각이상으로 길다. 성견의 경우 평균 14시간~15시간 정도의 수면이 필요한다. 강아지의 경우는 더 길다. 물론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대체 본능으로 깊게 잠들지 못하는 렘수면 상태의 지속이긴 하지만 사람의 기준에서 본다면 하루 온종일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때 크림이는 엎드린 상태에서 영혼 없는 표정으로 내 위치를 파악한 후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듯 몸짓에도 변화가 없다. 피곤해서 곧 잠들고 싶다는 뜻이다.


건들지 말아 줄래요?

반려견과 함께하며 느낀 건 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감정들은 사람의 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반려견은 사람의 감정을 수용할 수 있다. 그건 다시 말해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견주의 감정과 교류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반려견이 사람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시 크림이 앞에서 만큼은 내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

내가 만나는 희로애락을 크림이도 함께 겪어가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크림이는 나의 감정 역시 잘 꿰들고 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좋은지 아닌지, 지쳤는지 아닌지

다 알고 있다.

"잠깐 기다려" 라는 말에 "저두 편의점 구경 하고 싶어요"로 시위중인 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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