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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28. 2023

상상과 현실은 다르지만

상상 속에서도 함께다.

개를 키우기 전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일상을 수없이 상상해 보았다.


한 손에 가슴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커피 한잔을 들고 우아하게 산책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현실은 우아라는 단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발랄 그 자체인 크림이가 뛰는 바람에 커피는 커피대로 쏟아지고 달리는 크림이와 쏟아진 커피에 신경 쓰느라 체력은 방전되었다. 우아한 산책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몸소 체험하게 될 뿐이었다.

거기다 똥 봉투 몇 개는 커피를 쏟아 옷이 엉망인 견주의 모양새를 한결 더 처참하게 만들어 주기 충분했다.


뛰지 말란 말이야

크림이 아기였을 때 터그 놀이를 해야 유치가 제대로 빠진다고 하여 열심히 터그 놀이용 장난감을 활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크림이는  장난감만 물고 밀고 당기며 놀면 되는 데 꼭 광분하였고 입이 장난감을 잡고 있는 내 손 위까지 올라와 피를 본 일도 여러 번이다.


이불을 정리하고 있으면 같이 노는 줄 알고 이불을 물어 구멍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걸 다시 실과 바늘로 꿰매는 수고를 겪으면서도 크림이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상상에는 변함이 없다.


난 가끔 크림이와 단 둘이 티브이 하나 책상 하나 놓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주일만 지내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꼴랑 네 식구와 개 한 마리 모여사는 집이지만

설국열차 마냥 종착지도 없이 밀려오는 빨래와 설거지 등의 집안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하다.

크림이가 온 후 달라진 건 난 그곳에 크림이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보고 싶은 영화를 맘껏 보고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둘이 산책을 나가고

배가 고프면 라면이나 끓여 먹고 글이나 쓰며 보내는 집구석에서 탈출하는 소박한 상상 속에 그렇게 늘 크림이가 있다.


설사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상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마킹을 해내는 크림이 때문에 곤란할 수도 있고 나가자고 조르며 내 휴식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보드랍고 따뜻한 크림이 24시간 내내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오늘도 크림이에게 사료값을 벌어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나선다. 돌아오면 할 일이 태산이라 크림이를 옆에 끼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저녁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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