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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07. 2024

반려견의 이중생활

집에선 I 공원선 E

반려견은 이중견격 견이다.


집에서 세상 얌전한 크림이의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엄마 따라다니기

밥 먹기

잠 자기


크림이는 동네에서도 사람을 만나든 개를 만나든 짖거나 으르렁대는 일이 없다. 꼬리 프로펠러만 신나게 가동할 뿐이다.

보는 사람마다 순한 강아지라며 입을 모은다.

난 마치 내 사람 자식들이 칭찬받을 때처럼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다.


이런 크림이가 돌변하는 순간이 있다.

산책 준비부터 심상치 않은 낌새를 풍기다 애견 운동장에 도착하는 순간 절정을 이룬다.


견 운동장 입구 까지는 일단 전력질주다.

철문이 열리면 여기저기 킁킁 거리며 마킹을 하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양호하다.


똥을 한 번은 족히 다. 똥을 치우고 똥봉투를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가는 도중에 또 똥을 .

헨젤과 그레텔에 남매들이 길을 찾을 용도로 숲 속에 흘리고 다니던 그 빵부스러기처럼 똥을 흘리고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애견 운동장에서 크림이 별명은 똥똥이다.

난 최대 일곱 번까지 싸는 크림이의 똥을 치워본 적이 있는 위대한 견주다.

달랑 천 원 내고 입장하는 애견 운동장에서 똥을 시간 차를 두고 싸니 무료로 제공되는 똥봉투 사용량도 크림인 많은 편이다.


그리고 뒤에 따르는 민망함은 고스란히 견주인 나의 몫이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크림이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대며 몸을 비벼댄다. 비벼댄다기보다 그냥 상대의 의도는 무시하고 자기 몸을 사람에게 문지른다고 해야 맞겠다. 그럴 때는 기분이 무지 좋다는 신호로 웅웅 소리를 낸다. 만져 준다 해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몸을 사방으로 비틀고 흔들고 저러다 재주 부리듯 물구나무라도 설 판이다.


이렇게 애견 운동장에 간 크림이는 100프로 I 개에서 100프로 E개로 변한다. 

번잡스럽고 어수선한 개가 된 크림이는 주인을 닮았다는 애견 운동장 멤버들의 농담에도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 인양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잘 논다.

오늘 이 구역은 내가 접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급 조용해진 크림이는 외출 후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조차 인형인 듯 얌전하기만 하다. 그리고 내 옆에서 솜뭉치의 모습으로 변한 후 그렇게 잠든다. 그날은 모처럼의 휴가였기에 요 사랑스러운 이중견격 견을 이렇게 옆에 끼고  행복할 수 있었다.



솜뭉치?찹쌀 모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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