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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14. 2024

반려견 인생의 8할은 기다림

당연한 기다림은 없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이중적이다.

데이트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 가득한 기다림

방학이나 여행을 기다리는 이들의 들뜬 마음


건강 검진 결과를 불안하게 기다린다거나

시험 합격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험생의 마음


들뜸과 설렘, 불안과 초조가 기다림이라는 세 글자에 공존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좋은지 아닌지가 명확하게 구별이 되는 기다림은 반려견의 삶의 대부분을 말해주는 조금은 슬픈 단어이다.



배변 훈련과 더불어 앉아 기다려 반려견 훈련의 기본이 되는 명령어이다.

여기서 기다려 명령어이긴 하지만 언어적 표현의 하나로 흥분한 반려견을 진정시키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식사 훈련에도 두루 쓰인다.

또 다른 기다림반려견이 보이는 비언어적으로 표현되는 기다림이다.

반려견의 삶 전반에는 인내심을 내재한 기다림이 존재한다.


출근한 나를 하루종일 목이 빠지게 기다린 크림이는 내가 퇴근 후 만나는 첫 번째 가족이다.

버선발로 맞아주는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의 격한 환영이 나를 기다린 크림이의 마음만큼 반갑다.

샤워가 끝난 후 욕실 문을 여는 그 순간도 크림이는 바로 내 시선 앞에 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린 모양이다. 

내가 똥을 쌀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한결 같이 내 근처에서 나를 기다린다.


어쩌다 크림이 인생의 일 순위가 되어 이 말 못 하는 연약한 동물을 이토록 기다리게 만드는 몹쓸 인간이 된 것인지...

마냥 미안하기만 하다. 불안과 초조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내재되어 있는 크림이의 기다림은 멈출 수가 없는 시간처럼 계속된다.


그렇게 반려견은 숙명처럼 가슴에 견주를 향한 기다림을 각하고 산다.

샤워 후 내가 나오길 기다리는 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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