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est hour, 2018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았다. 유튜브에서 추천 영화는 신기하게도 내가 이전에 보고 싶었던 것들만 골라서 나열해 준다.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파악하는 AI의 알고리즘 덕분인지, 예전부터 봐야지 하면서 잊고 있었던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재밌게 보았던 '덩케르크 (Dinkirk)'와 연관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더욱 흥미가 있었다. 덩케르크는 주로 다이나모 철수작전에서의 영국 군인 및 공군 장교, 그리고 민간 보트 자원자의 시선에서 2차대전을 바라보았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1940년 5월 말, 당시 수뇌부의 고민을 드러내었다. 특히 90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개리 올드만(Gary Oldman)의 출중한 연기 변신이 더욱 눈에 띄었다. 레옹 등에서부터 화려한 조연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이번에는 주연으로서 배우에게 연기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은 단지 외모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배우 본질의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부러웠다. 또한 신기하였던 것 중 하나가 배우 캐스팅이었다. 당시 실존 인물과 놀랍도록 유사한 인물에게 배역을 맡겼을 뿐 아니라 그들과 비슷하게 분장도 하였다. 실제로 주연 개리올드먼은 처칠의 목소리, 어투, 걸음걸이 및 기타 몸짓마저 철저히 분석해서 소화하였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과연 어떤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당시 히틀러가 영국 사회 및 정치인들에게 주는 공포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 루스벨트와의 직통 전화 장면이 픽션이었다고는 하나 (실제로 직통 전화선은 1년 뒤부터 생겼다고 함), 해외 원조를 구하는 처칠의 다급함을 잘 표현하였다. 인도에서도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고 하니, 영국에서 느꼈을 독일 전차부대의 본토 상륙에 대한 공포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도자는 단지 희망만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신념,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일으킬 수 있는 역할 역시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지하 전쟁 내각 (subterranean nerve center)에서 그가 점점 더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 앞에서 느꼈을 고뇌가 스크린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었다. 단순 선악 대립구도에서 벗어났지만, 흔히 현실이 그렇듯, 스스로를 극복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영화에서는 히틀러의 사진조차 나오지 않지만 극중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공포심이 자리 잡았다. 지도자로서 이를 없애버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 훌륭한 연설로 대중 및 의원들의 지지를 이끄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시민들이 타는 지하철에서 용기를 얻었다는 장면은 다소 과장이 있는 듯하다. 영화의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넣은 장면이라는 인상이 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명장면은 후반부 윈스턴 처칠의 호소력 짙은 연설일 것이다. 실제로 윈스턴 처칠은 195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문장가이자 달변가였다고 한다. 극의 주된 줄거리를 이루는 축 역시 비서로 고용된 젊은 타이피스트를 통해 보는 윈스턴 처칠의 개인적인 면이었다. 감독은 극을 통해 당시 긴박했던 영국 지도부의 고뇌를 조명함과 동시에 개인 처칠의 인간적인 모습, 가족적인 면 등을 표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가 타고난 주량가로서 항상 스코치를 묽게 타 마셨으며 입에 물고 있는 굵은 담배 역시 사료를 철저히 고증하여 면밀히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나 말과 문장이다. 윈스턴 처칠을 통해 말과 글이 가지는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과 실제 사진들을 올려본다. 명품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국산 영화들도 철저한 고증에 의한 역사물들이 더욱 많이 나오길 바라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A pessimist sees the difficulty in every opportunity:
an optimist sees the opportunity in every difficulty."
- Winston Churchill
출처:
https://slate.com/culture/2017/12/whats-fact-and-whats-fiction-in-darkest-hou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