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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통역사 현 Oct 25. 2024

'공간'은 곧 나다.

'공간(空間)'은 '텅 빌 공(空)'과 '사이 간(間)'이라는 두 개의 한자로 구성된 단어이다.


공기와도 같은 단어라서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표면적&논리적으로는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텅 빈 것들의 사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 걸까. '사이'라는 단어가 의미있으려면 최소 두 개의 물성이 존재해야 하는 데 말이다.


그렇게 단어의 사전적 정의로 시작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공간'은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지 않았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개념이자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무한하게 거대한 보이드(Void)로만 남아 있었을 텐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 호기심, 의도 및 역학 관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보이드가 나눠지고 창조 혹은 재창조되면서 인위적인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면서 '공간'이란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니까.


즉, 공간의 궁극적인 의미는 '공간'이 아닌 '인간'이다. 광활하고 텅 빈 것들을 구분 짓고 그 사이에서 관계와 의미와 가치를 설정해 온 주체인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간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인류'의 경제, 사회, 문화의 총체적인 기록을 유추할 수 있다면, 미시적으로는 '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살고 있는 공간을 보면 나라는 사람의 성향, 가족 구성원, 라이프 스타일 등 많은 부분은 높은 타율로 짚어낼 수 있다. 즉, 공간은 나의 역사이자 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공간을 주제로 하는 범주는 공간만큼이나 넓은데, 내가 브런치에서 주로 다루고 싶은 범주의 키워드는 실내 건축, 인테리어, 건축, 청소, 정리정돈, 미니멀리즘 정도이다.


어린 시절 내가 '방'의 단위로 독립했을 때에는 공간에 대한 취향도, 책임감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맥시멀리스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절대 취향이나 의지의 문제는 아니었다. 첫째,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둘째, 물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취향은 왠지 형이하학적 아니 좀 낮은 레벨의 취향이라는, 부모로부터 암묵적으로 물려받은 구시대적인(?) 가치관의 영향 때문에 지적 허영을 부릴 수 있는 것들에만 관심을 주었었고, 셋째, 당시의 나는 그냥 세상에 통째로 관심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의 양으로는 맥시멀리스트가 아니었지만, 아마도 방에 쌓여있는 먼지의 양으로는 맥시멀리스트였던 같다;; 적어도 청소 강박증인 엄마의 기준에서는 그러했다. 종종 엄마가 열폭하는 날이면, 나는 (우아하게 해석하자면)시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둔갑하곤 했다. 내 눈에는 1도 안 보이는 그 많은 먼지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혼나는 이유에 대해 전혀 납득할 수 없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를 먹고 환경이 달라지면 바뀐다. 바뀌어야 한 달라진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겪어본 여자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하겠지만, 나에게도 4가지는 거의 인간 개조에 가까운 변화의 계기였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온전히 어른이지 못한 체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되자, 아무리 부서지고 깨져도 너무 아파 피하고 도망가고 싶어도 직시해야만 하는 인생 최대의 퀘스트를 돌파해 나가면서 나는, 어린 시절 나를 혼내던 엄마보다 먼지를 100배쯤 더 잘 볼 수 있는 소머즈의 눈을 장착하게 되었다. (물론 소머즈의 귀와 체력도..)


신혼 시절 살았던 첫 집에서는 첫 6년 간 신혼 시절, 첫째 탄생, 둘째 탄생 및 매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숨 가쁜 성장 과정에 맞춰 집의 레이아웃도 매년 격변을 겪었다. 이 당시는 연년생 육아, 살림, 재택근무를 대타 없이 해내느라 물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이 시기를 겪으며 확신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버렸다. 정확히는 생존형, 혹은 생활형 미니멀리스트이다.


집안 관리의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미니멀리즘으로, 집안에는 가심비보다 가성비의 기준을 통과하는 물건들의 반입만 허락된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그곳과 스웨덴 감성 가득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그곳이 주요 생활용품 구매처이며, 그중에서도 철저히 우리 집의 상황에 부합하는 가성비 국민템 위주로 구매한다.


한 번 사면 오래 보유할 수 있는 취향이 담긴 예술성과 품질을 보유 갖춘 하이엔드급 물건들만 갖춘 이상적인 미니멀리즘을 실현하는 것이 노후의 로망이다.


두 번째 집은 첫 번째 집에서 준신축 부분 공사밖에 해본 적 없던 인테리어 초보가 겁도 없이 마이너스 옵션 분양 아파트 전체 공사를 직영으로 저질렀다. 이때부터 홈스타일링보다는 인테리어 공사 자체에 크게 빠져들게 되었고, 입주를 하고도 그 여운을 못 이겨(??) 뭘 자꾸 계속 만들고 칠하고 재봉틀을 돌리고 텃밭을 하고 요리를 하고.. 몸과 손을 써서 만들어야 하는 모든 활동을 너무 치열하게 하면서 살았다.


결국 우리 부부는 창조에 대한 욕구를 주체 못 한 나머지(?) 멀쩡히 잘 살던 집을 팔고 시골 살이를 감행했다. 세번째 집을 통해 시골에서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는 과정을 오롯이 경험했다. 집 설계도 건축 사무소를 끼지 않고 직접 했으며, 골조 공사, 창호, 전기, 목공, 타일까지는 직영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내부 공사 중 도장, 원목 싱크대 만들기, 데코 타일 깔기 등 최종 마감은 우리 부부가 모두 직접 진행했다.


현재 집 발코니, 셀프 시공한 우리 집 시그니처 공간


그러다, 우리의 시골 살이 계획에 큰 변수가 생기면서 다시 고향 도시로 복귀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20년 넘은 구축 아파트의 '올수리 직영 + 입주 후 1년 반 셀프 시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이 정신적인 면에서는 시골집 짓기보다 더 힘든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공간을 통해 지나온 삶을 통찰하고,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삶의 태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물리적 정신적으로 벅찬 작업인 '공간 ()창조의 여정'을 사랑하며, 나만의 공간이 아닌 타인의 공간 재창조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갖게 된 공간에 대한 경험들은 소중한 삶의 자산이자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공간들을 한층 깊어진 취향과 감각으로, 보다 예리한 눈으로 대하면서 공간을 살아가고 경험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배경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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