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불편함’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나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 그 상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매일 겪는 불편함들은 그저 피하고 싶고, 없애고 싶은 것들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부터 그런 불편함과 그로 인해 생겨난 애증과 함께 숨 쉬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그 불편함들과 마주하며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나름의 성찰을 하게 된다.
이 집은 20년이 넘은 구축임에도 불구하고, 지하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연결돼 있다는 점에 처음엔 좋아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위치는 지하 1층과 1층 사이의 애매한 위치였다. 지하 0.5층이라고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의 이토록 애매한 위치는 특히 두 가지 경우에 큰 불편함을 야기한다.
첫째, 짐이 많을 때에는 어디에서 내려도 계단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투덜대고 불평해 봤자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아니므로 체력 증진을 위해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거나, 짐을 많이 옮겨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해 온갖 문명의 이기를 동원하는 IT 활용 능력 함양의 기회라고 정신 승리한다.
둘째, 1층에서 내리는 사람과 지하 1층에서 내리는 사람이 함께 탈 때이다. 이 경우 지하 1층에서 내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큰(?) 시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1층에서 지하 0.5층으로 내려가는 시간에 비해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렸다 닫히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나는 지하 1층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와 함께 탄 분이 1층을 누르지 않길래 같이 지하 1층을 가는구나.. 했는데, 지하 1층에서 함께 내린 순간 그분은 반층을 뛰어올라 1층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 하는 감탄과 감사의 탄식이 나왔다.
별거 아닌 사소한 선택인 것 같아도 이렇게 배려와 센스 있는 판단을 하는 것, 그리고 판단한 대로 행동하는 것, 둘 다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런 배려를 예상치 못하게 받은 입장이었던지라 그때의 감사한 마음이 매우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렇게 아파트 지하 0.5층(?) 엘리베이터는 - 비록 개선할 수 없는 불편함이지만 - 그 불편함 덕분에 '사람에 대한 사소하지만 세심한 배려'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받았던 친절을 다른 분에게 되갚을 기회가 있었다. ㅎㅎ 나름 기분이 좋았다.)
음식 쓰레기 처리 문제도 그렇다. 지금 집에 이사 와서 올해 여름까지도 음쓰 처리기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이렇게 불편할 것인가 저렇게 불편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장기적으로 보면 음쓰 처리기를 놓는다고 마냥 천국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생물 처리 방식은 미생물을 계속 잘 키워줘야 하는데, 양념(염분)이 많이 묻은 건 그대로 넣으면 안 되어서 헹궈줘야 하고, 집 오래 비우면 미생물이 죽을 수도 있다. 고온건조방식은 내부 통 관리가 제대로 안 될 때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개수대 설치 방식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어느 방식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음쓰 처리기를 들이고 싶은 이유였던 수박 껍질, 큰 동물뼈, 복숭아 등 과일 뼈, 김장 때 배추 겉잎, 파뿌리, 무껍질 등등 평소에도 난도 높은 음쓰들은 기계로도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까, 음쓰 처리기도 결국 기계화된 소화 기관이라는 뜻이고, 사람의 소화 기관처럼 장수하려면 항상 클린하게 소식해야 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방식대로 불편할 것인가, 기계와 함께 불편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지금 보유 중인 집안 가전들도 관리하기가 벅차서이다. 이렇게 쓰면 집에 가전이 엄청 많은 것 같지만, 정기적으로 관리해주어야 하는 가전은 청소기, 식세기, 세탁기, 건조기뿐이다. 겨우 4개의 주기적인 필터 관리도 벅차하는데, 여기서 더 추가하면 나의 컨트롤 범위를 벗어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냄새나는 음쓰를 직접 버리러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더 고역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아날로그한 사람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청소할 때 처음 상태가 하드 코어일수록 다 치우고 났을 때의 쾌감 극대화를 즐기는 편이라 그런지 그냥 참을만하다. (보통은 냄새가 안 좋아지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긴 하다.)
이렇게, 불편함을 통해 나에게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집에서 가장 큰 물리적 불편함과 그로 인한 애증을 느끼는 곳은 주방이다. 인테리어를 통해 나의 철학적인 성찰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된 곳이 바로 이 주방이었다.
인테리어를 통해 메타인지의 부족 및 책임 회피(?)의 처참한 결과, 몹시도 간절했던 어떤 문제의 어이없을 만큼 쉬운 해결법을 하필 시공 직후 알게 되었다는 너무나 큰 아쉬움 등으로 인한 매일 깊은 애증을 느끼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주방 레이아웃의 최종 결정을 남편에게 맡겨버렸고, 나는 또 그 결과를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주방이 정리가 안 되면 아무리 피곤해도 밤에 잠을 못 자는 몹쓸 강박이 내재해 있음을 그때 알았더라면 절대 주방 구조를 저렇게 짜지 않았을 것이고, 남편이 그토록 무성의하게 결정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 당시 나는 왜 군말 없이 따랐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살아보니, 주방 구조가 어떻든 상관없는 건 남편이었고 상판이 어지러워도 힘들고 깨끗해도 힘들고, 레이아웃이 매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나인데 말이다.
나도 상판 위를 먼지도 물기도 아무것도 없도록 정리해야 하는 강박에서 나도 자유롭고 싶다. 물론 몇 번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결국 안 치우면 잠을 편히 못 잔다. (대체로 게으른 편인데 주방 상판에만 있는 강박이다.) 이런 나 때문에 애들도 강박이 생겼다. 특히, 아들이 그렇다. 내가 집을 가끔 외박했을 때 주방이 어지러우면, 신경쓰인다고 밤에 게임하다 말고 나와서 주방 치운다.(미안하다 아들!)
수납이 부족한데도 상판에 뭐가 올라와 있는 건 더 싫다 보니, 바꾸고 싶거나 새로 들이고 싶은 주방 살림이 있어도 들이지를 못하고 매일매일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방식으로, 보기에는 깔끔하게 주방을 유지한다.
주방 또한 쉽게 바꾸기 어려운 공간이므로, 매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주방을 대하는 태도가 먼 훗날 아이들이 각자 본인이 책임져야 할 주방이 생기면 그때 마력을 발휘하기를..', 혹은 '내가 주방을 대하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삶의 태도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혹은 '극도로 제한된 여건 내에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삶의 다른 분야로 확대 적용해 보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은 나의 주방이다.
나의 이런 속내와는 상관없이 겉으로 보이는 주방은 인테리어나 리빙 주제의 여러 매체에 노출이 되었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이렇듯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불편함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하나의 문제일 뿐, 그것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나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는 나의 하방을 다지는 데 도움을 주고,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태도는 나의 상방을 뚫는 데에 도움을 준다. 나는 그동안 하방을 다져왔고, 이제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쪽으로 관점을 확장하려고 한다. 불편함을 단순히 피하거나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불편함은 이제 나에게 성찰의 기회가 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더 나은 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