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전공한 인문학도에게 '엔지니어적 마인드'란?

by 남강현

올해 감리를 진행했던 현장 고객 중 한 분이 나에게 대학 학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고 그냥 인문학 쪽이라고만 대답했더니, 고객 분이 "어이쿠, 이 쪽 전공이 아니신 거네요? 인문학 전공이신데 엔지니어링쪽 일을 하시는 거.. 어렵지 않으세요?" 하며 다시 여쭤보셨었다.


그냥 영혼없는 스몰토크처럼 지나갔지만, 그때였다. 외국어 전공자 + 국어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지내온 25년의 세월 동안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지내온 '엔지니어'라는 단어의 개념이 비로소 피부에 온전히 이해한 게.


영어의 engineer도, 스페인어의 ingeniero도 word to word로는 기사, 수리공, 제작하다, 토목공학.. 요 정도의 선에서만 번역이 되는데, 일상적인 맥락이 아닌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engineer가 어떤 개념인지 제대로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었다. (물론 그럴 때는 무조건 word to word로 번역하면 안 되고 전후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여 적절한 단어로 치환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인테리어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내 집을 좀 더 가성비있게 공사 및 스타일링하고 싶다는 이유치고는 좀 많이(?) 공부하고 실행한 소비자' 수준에서 '인테리어 서비스 제공자'의 영역으로 넘어가 보려고 하는 과도기 혹은 초기 단계로 진입하다 보니 예전과 공간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소비자일 때는 공간이 주는 느낌을 순수하게 즐기면 되는데,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이라면 '소비자에게 이 느낌을 주려면 어떤 시공법을 적용했는지, 시공 디테일은 어떻게 되는지 이 시공을 여기에 구현한 공간적 전후 맥락은 어떤지, 시공한 실제 결과가 도면으로 구상했을 때와 어느 정도나 일치하는지' 뭐 이런 쪽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좀 더 '공학적, 기술적'인 면으로 초점이 옮겨갔다고 느끼긴 했는데, 이게 바로 '엔지니어적인 마인드'였던 것이다.






20대 초반 뒤늦게 찾아와 더 무서웠던 사춘기(대2병) 광풍을 해소할 수 있었던 몇 개 안 되는 창구 중의 하나는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스페인어 콘텐츠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SNS가 발달한 시절이 아니었어서, 내 콘텐츠를 모으는 발행 하든 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직접 익혀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젊고 무모하고 체력도 열정도 남아돌던 그 시절 나는 '내 콘텐츠'에 대한 열망 하나로 생판 모르던 html을 독학하여 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혼자 A~Z까지 다 하는 건 도저히 머리가 안 돌아가서, html 책을 사서 독학도 했다가, 웹브라우저 페이지 중 맘에 드는 템플릿이 있으면 마우스 우클릭으로 html 소스 보기를 통해 소스 코드를 뽑아서 책과 같이 보면서 암호 해독하듯 뜯어보고, 빈 메모장에 긁어다 붙여서 내가 원하는 대로 변주를 주면서 이렇게도 변형해 보고 저렇게도 바꿔보고..


내가 html 명령어를 영어 단어의 뜻으로 미루어 짐작해서 이 부분이 이 역할 구현하는 거겠거니.. 하고 가정하고 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변주를 줘봤을 때 내가 상상한 대로 맞아떨어지면 그게 그렇게 짜릿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그 기쁨에 취해 어려워도 내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습득해 나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더듬어 나가는 듯했으나, 맨 땅에 헤딩하듯 조금씩 알아나가며 보이는 게 점점 더 많아져갈 때의 기쁨, 이과 쪽은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세계인 줄 알았더니 얘네도 알고 보니 수많은 '언어' 중 하나였다는 깨달음.


비록 그 당시 만들었던 홈페이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악으로 깡으로 html을 뚫었던(?) 경험은 계속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내가 관심 없는 것, 내게 먼 것도 언젠간 나와 연결될 수 있고, 내게 낯선 것은 '낯선 것'일뿐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도저히 어려워서 극복이 안 될 것 같으면 내가 자신 있어하는 것과 연관지어 비슷한 점을 찾아내려는 노력(특히, 이것도 '언어'중 하나다..라는 생각)


그런 식으로 관점을 바꾸고 심리적 허들을 낮추면, 넘어서지 못할 것이 의외로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드림위버가 나와서 html 기반의 웹페이지를 만드는 게 훨씬 쉬워지자, 어렵게 독학하며 느꼈던 성취감이 반감되어 오히려 아쉽기까지 했었다.)






요즘 나의 친구이자 비서이자 심리상담가가 되어주고 있는 ChatGPT에게 '외국어를 전공한 인문학도가 인테리어나 공간 기획을 잘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엔지니어적 마인드'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의 친구는 '엔지니어적 마인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문제 중심적 사고, 효율성과 실용성 중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외 대답해 준 특징들도 뼛속까지 이과인 남편을 분석했나 싶을 만큼, 남편을 대입하면 너무나 이해가 잘 되었다.)


예를 들자면, 공간에 대해 어떤 불편함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고 싶다면 이과적인 차원에서는 무엇이 불편하고 왜 불편한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다음 그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기 위한 기술적인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심리적, 문화적, 미학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엔지니어적 마인드'를 갖춘다는 것은 문과 재질인 사람이 이과적 성향을 보완하여 융합해 나간다는 뜻이고, 정반합의 과정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기존의 공간 기획, 디자인에 '나만의 관점'을 추가한 나만의 공간 편집 혹은 창조를 해 나갈 수 있는 무기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낯선 것을 어려워하지 말자. 보다 어려운 선택을 할 때 공간도 삶도 더욱 입체적이고 풍성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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