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놓지 않고 위내시경 한 이야기
어제 검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좀 ‘덜 익숙하게’ 모든 과정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제 몸을 그 장면 안에 넣고 말이죠.
예약 시간에 맞춰서 동네 내과에 도착했습니다. 한 세 종류의 서류 양식을 채우고 질문에 답하고 또 서명하랍니다.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죠.
가족력 항목에선 이제껏 늘 경쾌하게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를 선택하면 되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은 것이 살짝 씁쓸했어요. 씁쓸함은 혼자 삼켰습니다.
적힌 내용 가운데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 있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으레 필요한 것이려니 했지만 맨 마지막에 개인식별정보공유 어쩌고저쩌고에는 동의하지 않고 서명했습니다. 간호사 분이 한번 확인을 하더군요. "이건 동의 안 하셨네요?" "네"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제가 유난 떠는 건 아니죠? 저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데...') 덕분에 꿋꿋함을 조금 소모해야 했습니다.
위 속에 가스를 없애준다며 어떤 약물을 마시라고 해서 마셨습니다. 쓴맛보다는 단맛에 가까웠지만 왜 이런 걸 마시는지 제 혀의 미각 세포들은 영문을 몰랐을 겁니다.
피를 뽑히고 나서는 위의 움직임을 줄여준다는 주사도 맞았습니다. 전에 내시경할 땐 주사 맞은 기억이 없는데 말이죠. 주사 바늘 끝이 매우 좁기는 하지만 (달리 말해 뾰족하죠) 멀쩡한 피부와 근육을 찌르는 것은 몸에게 충격과 폭력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촬영실 안에 공용 가운을 걸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루피가 인쇄된 원피스 티셔츠를 벗고 말이죠. 티셔츠 무늬가 엑스레이를 찍는데 정말 문제가 될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가운은 깨끗해 보였습니다. ‘오늘 내가 맨 처음 입는 것이려나?’...
엑스레이는 보이지 않는 입자가 내 몸을 관통하는 것이라죠? 아무 것도 보이질 않으니 그렇게 알 뿐입니다. 이 정도 방사선 양은 괜찮다니 그러려니 할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불안을 낳습니다.
목구멍을 마취해 준다는 약물을 5분 동안 입 안에 머금고 누웠습니다. 마취 스프레이도 뿌렸고요. 혀가 매웠습니다.
내시경을 물고 놔 주질 않을까봐? 아니면 내시경이 쑤욱 들어가는 걸 입으로 느끼는 것도 끔찍할 테니? 입에는 플라스틱 관을 물립니다. 간호사 분이 그 관을 잡고 눌러주셨고요. 내시경 하는 내내 불편하더라니 끝나고 보니 아랫입술 안쪽이 아주 살짝 뭉개져서 헐었네요.
식도까지 완전 마취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시경을 하는 내내 다섯 차례 정도 경련하듯 구역질을 했습니다. 전날 밤 10시 이후로는 아무 것도 먹지 말라고 한 건 안을 잘 보기 위해서겠지만, 배 속이 텅빈 덕분에 구역질이 헛구역질에 그칠 수 있었습니다.
일반 내시경은 고통스러웠지만 다음에도 수면 내시경은 안 할 겁니다. 약물로 정신을 잃는다는 건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깨어나면 뇌가 놀라거나 혼란스럽지 않을지...
의사 쌤이 사진을 한장한장 보여주며 어느 부위인지 친절히 알려주셨어요. 여기 전시하지는 않겠습니다. 위는 깨끗하다고 술담배는 안 하니 운동만 좀 하라시네요.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엔 폭력이 난무합니다.
새해에도 병원은 멀리들 하시길. 주위에 누군가 병원에 간다면,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것이라도, 예방 접종이든, 임플란트든, 보톡스 시술이든 시간이 허락한다면 따라가 주세요. 병원은 아픈 곳이고 아플 때 혼자면 서럽잖아요. 병원 따라갔다 괜히 감기 옮아오시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