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일감을 오갈 수 있을 때의 장점
처음에는 한번에 하나의 과제만 풀었다. 크럭스에서 막히면 쉬었다 다시 덤비고 쉬었다 다시 덤비고 했지 다른 과제를 집어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오늘 현재 볼더링 과제 2개와 클라이밍 과제 2개를 손에 쥐고 있다.
서로 다른 과제에서 집중적으로 도전 받는 근육 부위나 능력이 다르다. 지금도 과제 하나는 첫번째 홀드를 잡는 것에서부터 막혀있다. 지쳐서 악력 자체가 약해지면 아예 연습할 수 없게 된다. 다른 한 과제는 루프, 천장에 완전 매달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루프의 홀드를 잡기 때문에 등과 어깨 근육을 주로 단련시켜 준다. 또 하나는 골반의 가동 범위도 아마 중요한 열쇠일 듯 하고, 나머지 하나는 횡으로 움직이는 트레버스인데 크럭스는 다 뚫었지만 자세가 안 좋아서 중간에 펌핑이 오는 게 문제다. 1주일 넘게 붙잡고 있는 과제다.
여러 과제를 오갈 수 있으면 일단 좌절의 데미지가 적다. 루뜨의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크럭스를 뚫는데 연구가 더 필요할 수 있고, 특정 근육이 과잉회복을 거치며 필요한 만큼 강화되는 데는 1주일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과제 하나, 심지어 크럭스 하나에만 발목을 잡혀 있다가는 운동 자체에 흥미를 잃고 나가떨어질 위험도 있다.
그런데 정신적인 데미지보다 물리적인 손상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여러 과제를 동시에 푸는 것의 장점은 더 극적이다. 기본적으로 코어의 안정성은 어느 과제에나 다 요구되지만 전완근을 조금 쉬게 해 주면서 등어깨 근육을 단련할 수는 있다. 계속 같은 루뜨에 같은 크럭스만 붙잡고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충격이 몸에 쌓이면 이틀 사흘 안에 회복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지금 어디에 피로가 쌓였는지를 살피며 일을 옮겨다님으로써 특정 부위가 집중적으로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업무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디든 피로할 때마다 책상을 벗어나 사무실을 벗어나 심지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베스트다. 하지만 업무 시간을 완전 자유롭게 마음대로 정하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내게 선택권이 없이 정해진 시간 혹은 일하기 효율적이게끔 애써 마련한 시간 동안 각 부위의 피로감을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두 세 가지 일감을 옮겨다님으로써 손상을 분산하고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의 회복탄력성도 지키며 단련과 성장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 효율이 장기적으로는 순간순간 업무 간 전환 비용의 비효율까지도 상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