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바다에 던져진 이름들 — 살아남은 일곱 살의 기억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기어가듯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정원 60명의 화물선이었습니다. 그 배에서 일곱 살 하경숙은 죽음을 배웠습니다.
배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안은 채 위태롭게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속도를 높이면 배가 전복될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사람들 마음은 폭풍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함흥 문화 여관을 버리고 떠난 열여섯 식구도 그 배 위에 몸을 실었습니다. 살아서 남쪽 땅을 밟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간. 어른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말수는 줄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살 경숙은 달랐습니다. 배 안의 공기가 얼마나 무거운지, 왜 어른들이 자꾸 한숨을 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느린 항해가 그저 지루했을 뿐입니다. 아이는 화물칸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상황은 몰라도, 발걸음은 멈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선실 깊은 곳에서 한 여인의 절규가 터져 나왔습니다. 배의 쇳소리와 뒤엉켜, 뱃속을 찢고 나오는 울음. 아이는 소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젖먹이를 안고 있는 한 어머니. 그러나 아기는 울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낮게 속삭였습니다. 전쟁통에 제대로 먹지 못해 젖이 말랐고, 굶주림에 빈젖을 빨던 간난쟁이는 끝내 숨을 놓고 말았다고. 그러나 일곱 살 경숙은 그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이 엄마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만 또렷이 보였습니다. 세상이 함께 꺼져버린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후, 미 해군 다섯이 다가왔습니다. 큰 총을 멘 채였습니다. 세 사람이 저항할 힘조차 없는 어머니를 붙들어 눕혔고, 두 사람이 아이를 떼어내 담요로 감쌌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경숙은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군용 담요에 싸인 작은 몸이 갑판 끝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바다로 던져졌습니다.
첨벙.
그 소리는 짧았지만 오래 남았습니다. 물결은 잠시 흔들리다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라앉았습니다. 담요는 잠깐 떠 있다가 이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으로 오는 동안 아이는 그런 장면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 기어 다닐 힘조차 없던 작은 생명들. 어른들은 배고픔을 이 악물고 버텼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죽으면 담요에 싸여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이름도, 작별도 없이.
그날 이후, 경숙은 울다가도 금세 멈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쟁은 아이에게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을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무섭다고 오래 말할 수도, 슬프다고 마음껏 울 수도 없었습니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항해는 잔혹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사람은 끝까지 사람으로 남으려 애썼습니다. 마지막 한 숟가락을 아이에게 건네던 손, 낯선 이의 어깨를 감싸 안던 팔,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던 손바닥. 죽음이 가까울수록 더 또렷해지는 인간의 온기였습니다.
6.25 전쟁은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앗아갔습니다. 대신 어린 하경숙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었습니다. 포성과 눈보라 속에서 그날의 울음은 오래 미뤄졌습니다. 지금에서야 그 아이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미처 울지 못한 울음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하경숙 어르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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