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아들 여행을 차리다 #3, 작은마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마주한 즐거움

by 김서연

여행의 즐거움은 목적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라도는 경상도 바로 옆에 붙어 있지만 기차로 이동할 때는 직통 하나 없는 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라면 밀양에 위치한 삼랑진을 걸치는 방법이 있는데, 벚꽃이 필 때쯤 다녀왔던 순천을 가면서 이곳에서 1시간 정도가 붕 뜨게 되었다. 날씨도 햇살도 좋고 역 안에만 있기도 지루하니 밖을 나가보자 싶어서 카메라와 삼각대 단단히 부여잡고 아들 손을 잡았다.


한참 걷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시기라서 엄마 손을 놓고도 혼자 걸어보겠다고 우기는 터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안쪽 길가로 들어섰더니 웬걸. 벚꽃들이 아름드리 펴있는 게 아닌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시골길에서 둘이 함께 보는 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벚꽃이 뭔지 모르는 이 아이 머릿속에는 꽃으로 입력이 되었을지 열매로 입력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무에서 하늘하늘 떨어지는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자서 또 뭉클했다.


삼각대를 나무 높이에 맞춰서 설정을 하고 힘껏 아이를 들어 올렸는데 타이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포동포동 살집이 올라 10킬로를 육박하는 아들의 몸무게는 제대로 웨이트 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번 설정을 하고 찍은 사진들은 초점이 다 어딜 간 건지 모르겠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 또한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총 40장의 사진을 찍고 단 2장의 사진을 건졌다. 혹독한 과정 때문인지 그 사진들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



어떨 때의 나는 굉장히 감성적이 돼가곤 한다. 기차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이와 떠나다 보니 이런 생각지 못했던 곳에 내리다 보면 감성이 더 충만해진달까? 내가 내려보지 못한 곳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언제 이 많은 곳을 다 가볼까 싶다가도 아직도 가볼 장소가 많이 남았구나 라는 안도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삼랑진은 큰 마을이 아니다. 초등학교가 있지만 역 밖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시골이라는 단어가 딱 떠오른다. 역전 우동 집이 있고, 작은 카페가 있고, 오래전부터 운영해오던 가게들도 보인다. 본인의 고향은 충남 서산시이다. 서산 역시 공단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유입이 되면서 꽤나 커졌지만, 내가 살던 대산읍은 생각해보면 깡촌이나 다름없었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점이 하나도 없었고 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밀가루 도우가 두꺼운 피자집, 옛날 치킨 집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해 곳곳이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살아왔던 그곳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높은 아파트들보다는 낮은 주택들이 줄지어 있어 걸어 다니면서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는 도시와는 또 다른 평온함에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풀어지고 아이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웃음이 베어 나왔다. 아마, 집 근처였다면 주변에 위험인자들이 있을까 살피느라 걱정만 가득했겠지.



할머니 댁 느낌 물씬 나는 집. 사진 찍으라고 지어진 집도 아니고, 일부러 세워놓은 자전거도 아닌데 그냥 거리 곳곳이 포토존이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마을 풍경은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물론 작가들마다 글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방대한 정보만 줄줄 나열해 읽는 사람마저 책장 넘기기에 급급한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자신만의 에피소드, 느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을 풀어놓은 에세이를 선호한다. 도서 한 권 일 뿐이지만, 그 책으로 인해서 느껴지는 대리만족과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설렘은 아무한테서나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하듯 여행 또한 마지막 종착지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는 또 다르게 중간으로 새면서 내가 잊고 지냈던 것들을 아이와 함께 경험하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끝만 정해놓고 가는 건 너무 목적만을 위한 목적 달성하기에 치중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연히 찾아온 어느 봄날의 반가운 만남으로 나와 아이의 시간은 행복한 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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