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아들 여행을 차리다 #4, 고양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아들과의 여행

by 김서연

우리 집에는 9살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함께 있어와서 그런지 아주 애정이 각별하다. 모찌(고양이)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중년쯤 되는 나이라 어렸을 때에 비하면 뛰어노는 것도 즐기는 나이가 아니라서 활동량 많은 단하를 감당하기에는 꽤나 벅차고 귀찮은 건지 피해 다니는 일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 곁을 내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먼저 와서 엉덩이를 치대 기도 하고 뽀뽀도 해주고 본인 나름대로 친근함을 표시해준다.


문제라 하면, 22개월의 아들의 행동은 한마디로 과격 그 자체였다. 이쁘다고 쓰다듬다가도 꼬집기도 하고, 꼬리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다고 등위로 올라타는 애정이라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모찌에게는 괴롭힘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많다.


그렇다고 모찌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다. 피하기도 해 보고 싫다고 소리도 쳐도(하악질이 아니다) 그저 까르르거리다가 솜방망이로 한 대 맞은 후에야 울면서 나에게 달려온다. 웃기는 건 울음을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가서 뽀뽀해달라고 입을 쭈욱 내밀고 있는 아들과 그 입에 자기 입을 가져다 대는 모찌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둘은 평생을 함께할 친구구나 싶었다.


집에서 고양이 사랑이 밖에서라고 안샐까. 아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밖을 돌아다니다 부스럭 소리가 나면 고개가 홱 돌아가고, 풍경을 잘 보다가도 풀과 나무 사이로 고양이 움직이는 게 눈에 띄면 가방에서 사료부터 주섬주섬 꺼내서 길고양이의 눈이 닿는 곳에 부어놓고 뒷걸음 종종 거리며 물러나는 건 집사들의 숙명인가 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환대하는 건 아니다. 우리 집에 사는 아이가 길에서 있다 보호소로 온 녀석이어서 더 길냥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걸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줄 사료가 똑 떨어졌을 때는 왜 그렇게 미안하던지 가방에 500g의 사료를 매일 가지고 다니는 습관도 생겨버렸다. 가방이 무겁지 않으면 불안하고 가방이 무거우면 안심이 되는 이런 마음 이해하실까?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와 같이 커온 탓인지 길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전혀 경계심이 없다. 길에서 사는 아이들 중에서는 아픈 아이들도 있고, 깨끗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하루는 걱정이 돼서 조심스럽게 돌려 말해보기로 했다. '고양이 친구들은 눈으로만 보는 거야. 단하가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이라고 말했더니 대차게 '아니야!'라고 대꾸를 하는 게 아닌가?


근데 더 재미있는 건 나를 보고 피하던 아이들도 아들한테는 먼저 다가와서 비비적 거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밥은 내가 줬는데 왜!'라는 질투심이 타오르면서 한편으론 내가 아들을 상대로 뭘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아들을 상대로 질투라니. 모자의 고양이 사랑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가창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동제미술관은 꽤나 안쪽에 위치해 있는터라 가기가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작은 미술관과 카페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주말에는 미술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평일에 여행을 다니는 우리에게는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미술관에서 조형물을 관람한 후에 카페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가던 중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는 게 보였다.


'어? 고양이다!'라는 내 말과 손짓에 아들의 고개가 빠르게 홱 돌아갔다. 고양이가 자리를 떠날까 조급 했었는지 짧은 보폭으로 걸음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삐져나왔다. 단하가 다가오는 걸 보고 자리를 벗어났던 고양이는 어느 쪽으로 이동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만의 동선이 있는지 정원을 한 바퀴 돌아서 햇볕이 잘 드는 돌 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지그시 감고 낮잠을 청하는데 누가 다가오던지 만지던지 신경도 안 쓰더니 결국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까지 눈 한번 마주쳐주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손길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고양이가 예뻤는지 연신 쓰다듬어 주고 고개를 기울여서 얼굴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아이 입에서 '모찌야' 라는 말이 나왔다. 모찌와는 색깔부터 다른 고양이였고 헷갈릴 리도 없었고 '야옹이'라는 단어를 이미 말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왜 그렇게 말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저자 본인의 생각이지만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아마 모찌를 생각하면서 예쁘다예쁘다를 해준 게 아닌가 싶었다. 모찌는 단하가 한두 번 쓰다듬으면 자리를 휙 벗어나기 때문에 자기가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만져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이 길냥이는 자신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있으니 그동안 모찌에게 해주고 싶었던걸 대신해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여행에서는 새끼를 배고 있는 엄마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를 가진 고양이는 꽤나 신경이 날카로운 편이어서 되도록이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단하가 벤치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 한쪽을 가리키며 이거!라고 말한다. 그쪽은 모찌가 가장 애정 하는 간식은 챠오 츄르가 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맛있는 걸 주면 다가올 거라 생각을 한 걸까?


아이가 원하는 거니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먹지 않으면 근처 바닥이 깨끗한 곳에다가 짜줄 요량으로 간식을 뜯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는 집에서 모찌를 부를 때처럼 간식을 들고 손을 흔들흔들거려보았다. 밀폐된 공간도 아닌데 그 넓은 공기 중에 간식의 냄새가 새어나간 건지 한 발자국씩 어미가 다가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양이에 덩달아 기분 좋아진 아들은 본인 앞에 다가오기도 전에 간식을 쭈욱 짜서 바닥에 흘리기 시작했다.


포장지에서 나던 희미한 냄새가 짙어지니 맛있는 냄새에 야옹 하고 거침없이 다가와서 간식을 핥아먹는다. 간식이 똑 떨어지니 미련 없다는 듯이 뒤돌아 가는 어미를 보고 이내 내 눈을 보고 웃음 가득 핀 얼굴로 '또!'라고 외치는 아이를 보니 가방에서 간식 하나를 다시 쥐어줄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어미 고양이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자신은 이미 먹을 만큼 먹었다는 듯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길고양이와의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다. 갈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미련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는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는 아이의 모습은 아련함 그 자체이다. '야옹아 뭐하니?'로 시작되었던 그들의 만남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야옹아 가자!'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아직 단어량이 풍부하지 않아서 '같이 가'라는 단어를 '가자'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우리 집엔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아이가 살고 있다. 여행 중간에 만나는 고양이와의 만남은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서 만나볼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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