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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ug 29. 2021

둘째를 낳으라고요?

"어머니, 둘째는 없습니다"

출산 전후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나의 관계는 '팽팽한 고무줄' 같았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지 얼마 안돼 시어머니가 시누와 함께 집을 찾았다. 손주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기뻐하던 시어머니는 내게 "둘째는 딸을 낳아라. 딸이 너한테도 좋아.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했다. 내 표정을 읽은 시누가 시어머니를 툭 치며 한마디 전했다. "엄마는 무슨 올케 수술하고 실밥 푼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말을 해." 시어머니는 멋쩍게 웃었다. 쮸니가 네 살이 된 지금까지도 시어머니는 기회가 될 때마다 더 늦기 전에 둘째를 낳아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질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어머니, 저 힘들어서 못 낳아요"라고 선을 긋는다.


다소 싹수없는 며느리로 비칠 수 있지만, 둘째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는 나와 남편이 논해야 할 사안이다. 게다가 나와 남편조차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둘째의 성별까지 정해주는 건 선을 넘었다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어머니의 '둘째 강권론'은 불편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불편하다. 남편도 가끔 둘째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게 비친다. 남편이 육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엄마의 고유 영역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  내 그릇은 아이 둘을 케어하며 일과 가정을 양립할 만큼 크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자연스레 출산도 늦었다. 사실 주변 여기자들 대다수가 결혼이 늦다 보니 쮸니를 낳는 그 순간까지도 서른여섯의 첫 출산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리원 입성 후 심지어 나보다 열 살 어린 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놀라움이란. 그리고 이제야 육아가 조금 수월해졌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자신이 솔직히 내겐 없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손주를 양육할 의무나 이유는 없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며 첫째를 키울 때도 육아에  전혀 도움을 주시지 못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갈 수 없을 때 일하는 나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준 건, 지방에서 KTX를 타고 우리 집에 기꺼이 와준 친정엄마가 유일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둘째를 오늘 잉태해 내년에 낳는다 해도 둘째가 대학에 입학할 때 내 나이는 퇴직이 코앞인 환갑에 가깝다. 남편은 나보다 두 살 위다. 퇴직이 2년 더 빠르단 이야기다. 내가 둘째를 꿈도 못 꾸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삼 남매 중 맏이다. 아이를 셋을 낳은 친정엄마는 "무슨 둘째냐. 하나만 잘 키워라. 너도 너의 인생을 살아라"라고 하신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양가 부모님의 둘째 손주 온도차는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극명하게 갈린다.


막내 동생은 나와 9살 차이가 난다. 나와 두 살 차이인 여동생은 엄마 아빠가 한창 직장을 다니실 때 초중고-대학을 나왔다. 대학 진학 때 등록금 걱정을 한 적이 없고 나는 대학시절 유행처럼 번진 외국 어학연수도 캐나다로 1년간 다녀왔다.아빠의 은퇴 후 대학에 진학한 남동생은 나의 대학생활과는 전혀 다른 결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영문과를 나왔지만 어학연수를 가지 못했고, 엄마 아빠의 수입이 소액의 공무원 연금(사업을 이유로 퇴직 당시 공무원 연금 퇴직분의 일부를 일시금으로 받으셨다.) 밖에 없다 보니 기회가 될 때마다 국가장학금을 받았다. 틈틈이 식당이나 편의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브랜드 옷도 가끔 누나들이 사주는 게 다였다. 심지어 막내를 낳았을 때 엄마 아빠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젊었다. 삼 남매 중 나만 어학연수를 다녀온 게 미안해 남동생에게 어학연수를 갈 수 있는 돈을 누나가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남동생은 어학연수는 자신에게 사치라며 필요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남동생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조금이나마 보태 쓰라며 소액의 용돈밖에 주지 못했다.


남동생은 SNS도 하지 않는다.  대학 선후배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잣집 자제들이 많은데 SNS로 외국을 다녀왔다던가 그런 류의 피드를 보게 되면 짜증 나고 위축돼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옛날 싸이월드 시절, 토론토 어학연수 일상을 매일 사진첩에 업로드하며 기록한 20대의 내 모습이 스치며 남동생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노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행복한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물론 막내 동생은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책 없이 둘째를 낳으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감정은 날이 선다. 하지만 나름 요령이 늘면서 이젠 시어머니의 둘째 권유에도 웃으며 대응한다. "어머니, 아휴~ 저 너무 힘들어요. 내년에 마흔이잖아요~" "아휴 어머니, 저 진짜 둘째는 못 낳는데 어째요. 어머니 며느리 하나 더 보셔야겠어요~" 다소 미친년 같지만, 농반 진반이다.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첫째를 낳은 여자 후배랑 시댁의 둘째 권유 이야기를 나누다 후배가 이런 말을 건넸다. "저는 그냥 뭐라고 답하기도 뭐해서 '그렇죠~하나보단 둘이 좋죠.'라고 기계적으로 답해요. 그렇다고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으니 그냥 아무 감정 없이 말이라도 저렇게 하자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받기 싫어요 정말"


둘째 강권론에 대응할 매뉴얼 대화법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걸까. 어떤 사람은 '애가 더 중요하지, 일이 더 중요한가'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낼 수 있지만, 엄마이기 전에 나 역시 하나의 인격체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스스로 둘째 계획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그리고 둘째를 낳는 것 역시 나의 문제이고 나와 남편이 결정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제발 주변에서 '둘째를 낳아라' '첫째는 아들이니 둘째는 딸을 낳아야겠네'라는 조언의 탈을 쓴 스트레스는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여, "어머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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