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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12. 2019

원더 윅스

아이와 엄마의 성장의 시간

"얘가 왜 이렇게 보채지?  원더 윅스 기간인가. 맞네. 이번엔 몇 주나 이어질까."


처음 엄마가 돼 육아의 모든 것이 낯설던 시절,  유독 견디기 힘든 때가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글생글 웃으며 컨디션이 좋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떼쟁이가 되거나 일명 '엄마 껌딱지'로 돌변해 유독 엄마만 찾았다. 애를 앉고 화장실서 소변을 본 적도 있고 애를 안고 밥을 욱여넣었을 정도였다. 처음엔 애가 아픈가, 어디가 불편한가 싶어 여기저기 살펴보고 달래도 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육아서에선 '아이가 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딘가 불편한 것이고, 그걸 표현할 방법이 아이로선 울음밖에 없다'라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되어 내 아이 불편한 것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물론 자괴감에 빠지는 시기기도 했다. 


지쳐있던 시기에 임신 기간 읽었던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책이 떠올랐다. 임신 당시엔 육아를 경험하지 않아서인지 와닿지 않았던 단어 '원더 윅스'. 그토록 찾아다녔던 답은 바로 '원더 윅스'에 있었다.  초보 엄마들에겐 어쩌면 공포의 순간인 원더 윅스는 아이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급성장기를 말한다. 원더 윅스 기간에 아이는 우주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이, 때론 심하게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보챈다. 아이가 믿을 건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100일 전후와 돌 전후에 찾아오는 원더 윅스는 원더 윅스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릴 정도로 그 강도가 심하다. 비교적 원더 윅스 표의 표준형을 보였던 아들 쮸니는 역시나 100일 전후의 원더 윅스 때 보챔의 최고조를 보였다.


5~6kg 남짓 아이를 내내 안고 살다 보니 손목은 건염으로 너덜너덜해졌고 임신기간 쪘던 17kg의 살은 15kg나 빠진 상태였다. 잠도 거의 자지 못하니 신경도 날카로웠다. 설상가상 하필  시기에 남편은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연일 야근을 했다. 남편은 새벽 1시에 퇴근길에 나설 정도로 바빴다.쮸니에게

처음으로 힘든 감정을 보인 날이 그즈음이었다. 쮸니는 밤 9시부터 두 시간 넘게 자지러지게 울었다. 젖을 물려도 울었고, 열을 재봐도 36.5도 정상체온이었다. 몸에 무언가 난 것도 없었다. 두 시간을 넘게 안고 달래며 창작동요제에 출전한 어린이처럼 알고 있는 모든 동요를 불렀다. 나름 노력한다고 했지만, 밤 11시가 넘어가자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참을 수 없는 화가 명치 저 아래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아이의 신경질적인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더욱 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백일 남짓된 아기의 엉덩이를 세 번 평소보다 힘을  토닥이며 "제발  자라"고 외친뒤 울었다. 좋게 말해 세게 토닥임이지 나름 분노의 표출이었다. 엄마로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아이에게 못난 꼴을 보인 셈이었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쮸니도 잠시 논란 듯했다. 100일 된 아이도 마치 알건 다 안다는 듯이 말이다. 겨우 쮸니를 재우고 나서야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어린 아기가 뭘 알고 그랬을까. 무언가 불편했을 텐데 그걸 찾아내지 못한 내 탓이다'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다시 정독했다. 정말 원더 윅스만큼은 책으로 육아를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더 윅스는 생후 날짜가 아닌 교정일(출산예정일 기준) 계산한다. 그날은 정확하게 원더 윅스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쮸니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초보 엄마인 내가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돼서 아이의 힘듦을 토닥여야 하는데 나도 엄마는 처음인지라 고갈된 체력은 이성의 끈을 오작동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육아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그날 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육아서만 정확히 11만 5700원어치를 주문했다. 


글로 배우는 게 익숙한 타입인지라, 원더 윅스 표를 식탁 옆 아이의 사진이 걸려있는 벽에 나란히 붙였다. 원더 윅스 기간을 잘 숙지해 미리 대비하겠다는 의지였다. 알고 있느냐 모르냐의 차이는 컸다. 원더 윅스 기간이 다가오면  '곧 원더 윅스 기간이니 쮸니의 힘듦을 이해하자'라고 마인드 세팅을 했다.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아이가 보채도 평소보다 더 관대하게 대했고  "쮸니가 크느라 힘들구나. 엄마가 더 안아주고 사랑해줄게."라고 말해줬다. 알아듣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엄마가 안정된 태도를 보이면 좀 더 수월하게 원더 윅스 기간을 이겨내는 것 같았다. 


전우애를 자랑하는 조리원 동기는 나 포함 5명이다. 그중 첫째 엄마가 셋, 둘째 엄마가 둘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보니 원더 윅스 기간은 대개 겹쳤다. 단톡방서 "언니들, OO이가 요즘 너무 보채요. 다른 집 아가들도 그런가요?"라는 질문이 이어질 땐 "원더 윅스 기간이잖아. 우리 이거 몇 번만 더 넘기면 돼. 힘내자"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모든 성장엔 노력과 인내 고통이 따른다. 어린아이조차 도약이란 성장을 위해 성장통을 겪는다 생각하니 나름 겸허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원더 윅스'는 물론이거니와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가고, 초중고를 나와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고 결혼을 하고 모든 성장의 순간순간마다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 그게 바로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많이 부족한 엄마이지만, 아이에겐 엄마라는 존재는 어려움에 맞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지대가 아닐까.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아이와 엄마 모두 힘든 시간이지만, 아이도 엄마도 분명 한텀의 원더 윅스를 겪을 때마다 한 뼘 성장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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