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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22. 2021

내 아이의 첫 음식 '이유식'

엄마의 정성을 봐서라도 뱉지말아 줘


쮸니의 중기 이유식 중 한 메뉴


쮸니가 생후 6개월에 접어들었던 시절, 나는 요리연구가가 된 마냥 이유식에 열을 쏟았다. 일단 국민템이라 불리는 여러 이유식 도구를 사기 위해 온갖 SNS를 뒤져(#이유식 도구) 제품을 비교했다. 이유식 용기부터 냄비, 도마, 칼, 스푼 등 어찌나 브랜드도 많고 종류도 많던지, 거의 2주 정도 시간을 들여 고르고 또 골랐다. 밥솥 이유식을 할지, 20만 원에 가까운 이유식 마스터기를 살지, 쌀가루를 사서 만들지, 밥을 쪄서 갈아 만들지 어떤 방식을 선택하냐에 따라 사야 할 도구도 달라졌다. 초보 엄마다 보니 뭐가 좋은지 알 수 없었고 온갖 후기를 뒤져보며 장단점을 비교해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들이 써보고 좋으니 국민템이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온갖 '국민템'이란 마케팅 수식어가 내붙은 제품들을 하나둘 사들이며 이유식 도구를 완성해 나갔다. 마케팅에 홀려 산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가 '이유식 마스터기'다. 왠지 '마스터'란 단어 가는 '이 하나의 도구만 있으면 이유식은 문제없이 만들 수 있다'는 주문을 내거는 것 같았다. 초보 엄마에겐 솔깃한 아이템이었다.



아이가 처음 먹는 음식이다 보니 초보 엄마로서 의욕이 과했다. 무조건 재료는 유기농 제품을 파는 '초록마을' 고기는 무조건 '한우 안심', 편하다는 쌀가루 대신 무조건 밥을 지어 갈고 체에 내렸다. 초기를 넘겨 중기부턴 이유식의 감칠맛을 더해준다는 '육수 제조'에도 굉장한 공을 들였다. 육수를 내는 대만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였다. 생후 5-6개월 아기들은 엄마가 몇 시간씩 떨어져 있음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쮸니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집에 오면 이유식 제조에 들어갔는데 애는 엄마 찾아 울고불고, 엄마는 엄마대로 서툰 이유식 제조에 바등거렸고, 아빠는 아빠대로 우는 애를 달래며 '좀 대강 만들면 안 되냐' '그냥 이럴 거면 사 먹여라'라고 시위하듯 따졌다. 



결국 나는 아이를 재우고 '육퇴'를 한 뒤에야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소리, 고기 다지는 칼 소리, 쌀가루를 쓰지 않다 보니 쌀로 밥을 지어 이유식을 만든 뒤 믹서로 갈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소음에 쮸니는 쉽게 깨 울곤 했다. 이유식을 만들다 안방에 달려가기 10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3일 치 이유식을 만드는데 3~4시간은 우습게 넘겼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내 아이가 먹을 음식이란 생각에 하나하나 정성을 쏟았다. 태어나 이렇게 음식에 공들 을여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초기를 넘겨 중기에 들어서니 요령도 생겼다. 육수는 대량으로 만들어 팩에 넣어 냉동보관을 했고, 이유식 재료들은 잘게 다져 큐브로 만들어 냉동보관을 했다. 그리고 만들 때마다 적절히 큐브로 만든 재료를 넣어 이유식을 뚝딱 만드는 단계까지 갔다. 


쮸니의 중기 이유식부터 만들기 시작한 육수. 주로 소고기-닭-채소 육수를 사용했다. 채소 큐브도 중기부터 유용하게 사용했다.



맞벌이에 신혼 때도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지 않다 보니 이유식을 만들 때 손과 팔에 화상을 입는 건 예삿일이었고, 칼로 손을 베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내 아이가 한입이라도 맛있게 먹을 거란 기대 덕분인지 뜨거운 불 앞에서 연신 이유식을 휘저으며 조리하는 과정은 늘 즐거웠다. 내 나름의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했다.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다 먹어주는 아이도 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중기 이유식서 후기 이유식으로 넘어갈 때쯤 입자를 조금씩 늘려봤다. 아이는 조금 다른 질감이 낯선지 이유식을 한입 넣어주면 내뱉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쮼아. 엄마가 이거 만드는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먹지도 않고 다 뱉어"라고 돌도 안된 아이에게 서운함을 표했고, 아이는 그러든 말든 일단 거부했다. 일종의 '밥태기'였다. 심지어 아이가 거의 먹지 않았을 땐 애써 만든 이유식을 다 버려야 한단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이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한다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너무 좀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이때다' 싶었나 보다. 내게 요즘 시판 이유식이 엄청 잘 나온다며 이유식 만드느라 너도 고생하고, 애는 엄마가 이유식 만들 때마다 울고, 나도 덩달아 힘들다며 시판 이유식을 권했다. 슬슬 나도 지쳐가던 터에 남편까지 계속 '시판 이유식'을 강조하니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안돼, 안 그래도 입자 조금 커졌다고 애가 이유식을 거부하는데 어떻게 사서 먹여." 나의 똥고집은 더욱 완고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시판 이유식을 틈이 날 때마다 검색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 달리 집과 가까운 곳에서 수제로 이유식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업체들이 꽤 있었다. 관련 후기로 찾아보고 테스트용으로 몇 개 주문해 봤더니 유관상 내가 직접 만든 이유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유식 재료도 다양했고, 각 재료도 유기농으로 구입한 뒤 이유식 매장 온라인 카페에 사진으로 올라왔다. 가장 중요한 건, 쮸니에게 시판 이유식을 먹여봤더니 곧잘 먹었다는 점이다. 초-중기 이유식 때 그렇게 유난을 떨었던 엄마지만, 후기 이유식 땐 해당 가게에 주문해 먹였다. 두세 달가량 애용했던 것 같다. 


당시 이유식에 애를 쓰는 내게 둘째를 낳아 육아휴직 중이던 회사 후배가 이런 말을 전했다. "선배 저는 일찍이 초기 쌀미음부터 시판으로 먹였어요. 시판이 꼭 나쁜 게 아니에요. 엄마로서 시판 이유식을 먹인다고 죄책감 느끼실 것도 없어요 선배. 지금은 유기농만 먹이시지만, 나중에 유아식 넘어가면 소시지도 가끔 구워주신다에 한표 던집니다. 저는 이유식 만들 시간에 애랑 더 놀아주자 마인드로 일찌감치 시판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후배는 내 마음을 정확히 뚫어보고 있었다. 시판 이유식을 먹인다는 '죄책감'이 내가 시판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내 손으로 직접 정성 들여 만든 걸 먹여야 한다는 집착과 그렇지 못했을 때 생길 죄책감이 이유식 책 두 권을 번갈아가며 삼일에 한 번씩 가내수공업 이유식 공장을 돌리게 했다. 그리고 이유식을 떼고 유아식으로 넘어가선 복직 전까진 각종 반찬을 만들여 먹였지만, 복직 이후 1년 정도는 시판 유아반찬을 또 '배달'시켜 먹였다.


아이는 1년이 지나자 배달 반찬을 거부했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다시 나는 아이반찬 만들기를 하고 있다. 육아에 있어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가끔 '편리성'을 이용하는 것도 육아라는 마라톤 과정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가끔 아이의 '밥태기'(밥을 거부하는 시기)가 발현되곤 한다. 그럴 땐 후배의 예언(?)처럼 소시지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유식 만들 때 갖은 정성으로 오버하던 시절이 오버랩된다. 


유아반찬 정보를 주고받던 대학 동기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7세 남아의 엄마인 그녀는 내게 말했다. "야 정신 차려. 너 어릴 때 엄마가 라면 끓여준 적 없어? 그렇다고 너 '우리 엄마는 왜 라면을 끓여줘?'하고 서운했니? 아니잖아. 우리 제발 육아하면서 죄책감 느끼지 말자. 소시지 좀 구워주면 어떠니. 시판 반찬 좀 사서 먹임 어떠니. 매일 먹이는 것도 아니고. 우린 충분히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야. 그렇게 마음먹고 육아해야 아이도 엄마도 행복하다." 


때아닌 그녀의 강론을 들으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먹거리에 신경을 쓰고, 때로는 미안해하며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매 끼니 따뜻한 반찬 내놓기보단 미리 만들어놓은 반찬을 덜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이는 나 같은 워킹맘들도 많을터이니. '편리함'과 '정성'의 사이에서 '죄책감'을 저울질 하곤 하지만, 이마저도 좋은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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