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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ug 04. 2021

아이의 돌발진, 그리고 응급실


아이가 첫돌을 갓 넘긴 여름날.

잠투정을 심하게 부리다 겨우 잠든 쮸니가 새벽에 자지러지게 울며 깼다. 아이를 안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던 중, 손에 느껴지는 뜨거운 열감에 화들짝 놀랐다. 서둘러 체온계를 꺼내 아이의 체온을 쟀다.


"몇 도야?"

"39.2도"

"안 되겠다. 지금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과거에도 38도 전후의 열이 난적이 있었지만, 39도를 넘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누구 할 것 없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내달려 허겁지겁 택시에 올라탔다. 집 주변 소아응급실이 있는 은평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날 당직 의사는 평소 아이의 진료를 담당해준 주치의였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한 의사는 소변검사와 수액을 권유했다. 첫 번째 난관은 수액 맞기였다. 워낙 어린 아이라 혈관 찾기가 쉽지 않았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남자 간호사 한 명 여자 간호사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주삿바늘로 아이의 혈관을 찾았지만, 수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결국 간호사들이 당직의사에게 보고해 수액은 맞지 않았다. 남은 건 소변검사였다. 아이에게 소변주머니를 채우고 소변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의료진은 아이에게 해열제를 처방했고, 해열제를 먹고 난 아이는 조금 열이 내려가는 듯했다.


그렇게 6시간을 응급실에서 머물렀다.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소아응급실에는 주로 고열이나 감기 증상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찾았다.  돌이 안된 아이부터 유치원에 다닐법한 5~7세가량 아이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커가며 가끔 아플 수 있고, 그럴 땐 이렇게 응급실로 달려와야 할 상황이 곧잘 생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소아 응급실을 찾아 좌불안석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남편과 달리 차분하게 대응하는 한 부모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병원이 무섭다며 집에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능숙하게 안심시켰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아픈 아이에게 부모마저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 아이 엄마의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OO야. 너 응급실 처음 아니잖아. 많이 아파도 의사 선생님이 주신 약 먹으면 너 금방 나았던 거 기억하지?"


순간, '아 저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라 담대하게 대응한다기 보단, 아이가 아픈 이런 상황을 경험한 일명 짬에서 나올 수 있는 태도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내 아이의 고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안해했던 초보 엄마에게 그녀의 멘트는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소변검사 결과 아이는 우려했던 요로감염 등의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수액을 맞고 가면 좋을 것 같지만, 혈관 찾기가 어려워 딱히 지금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해열제를 처방해 줄 테니 또 열이 나면 시간 간격 체크 잘해서 먹이면 된다"라고 전했다. 뒤이어 "돌발진 일 수 있다"라고 했다.


[돌발진? 그게 뭔가요... 맘 카페에서 몇 번 본 단어인 거 같긴 한데....]


의사는 내게 외래 진료 예약을 잡아주며 "돌발진은 돌 전후의 아이에게 흔히 나타나는 고열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돌발진이 맞다면, 열이 내리면서 아이의 몸에 붉은 반점의 열꽃이 필 겁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어두운 밤 응급실에 들어갔던 우리 가족은 해가 솟은 아침에서야 나왔다. 아이의 열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내렸고, 신기하게도 정말 아이의 몸엔 붉은 반점의 열꽃이 피었다. 돌을 갓 지난 한 살배기의 성장통 마냥 열꽃이 피고 난 뒤에서야 아이의 컨디션은 회복됐고, 열꽃도 얼마 안돼 사라졌다.


"첫 애 땐 애가 열이 나면 무조건 응급실을 갔었어. 그런데 몇 번 응급실 갔다가 해열제만 받아왔던 경험이 쌓이다 보니 둘째는 미온수 마사지랑 상비된 해열제부터 먹이게 되더라" 아이 둘을 둔 회사 동료가 이날의 에피소드를 듣고 내게 해 준 말이다. 본인도 처음엔 허둥대었고 울면서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적이 있다는 고백과 함께.


누구나 부모가 된 뒤 세상에서 가장 아찔한 순간 중 하나는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닐까. 아이 대신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 정도니 말이다. 엄마는 바란다. 아이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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