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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Sep 19. 2023

내 친구가 연애를 한다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소개팅을 나가도 귀찮아서 만나기 싫다던 내 친구가 연애를 한다. 퇴근을 하면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게 낙이고, 운동도 귀찮아서 안 하던 내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더니 게임을 끊고 헬스장에 다닌다. 주말에도 집돌이를 자청하던 내 친구가 주말만 되면 밖을 나가고, 부산에 놀러 오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오지 않던 내 친구가 애인이 생기니 거침없이 장거리를 왕복한다. ‘나는 솔로’라는 연애 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보라고 해도 보지 않던 내 친구가 애인이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고 하니 예습 복습까지 하고 나간다.




나는 내 친구가 연애고 결혼이고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아니, 본인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소개로 사람을 만나도 관심이 별로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하다고 한지가 어언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래서 본인도 주변 지인들도 나도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더라.     


내 친구를 바뀌게 했던 그분과는 5년 전에 처음 인연이 닿았다. 지인과 만나는 데 그분이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었고, 호감이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계속 연결되지는 못했다. 당시에 내 친구가 그분을 만나고 와서 나에게도 예쁘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에는 들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에 지인을 통해 우연찮게 다시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내 친구도 5년 동안 소개팅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분도 그동안 남자들을 만나면서 어떤 면이 자기와 안 맞는지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내 친구는 5년 전보다 더 안정이 되었고, 그분도 내 친구의 직업이 장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만나서 이야기가 잘 통했고, 그 뒤로 한 달 동안 메시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장거리로 만남을 가지더니 세 번째 만나는 날 덜컥 사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내 친구를 봐 왔기 때문에 내 친구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전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었다. 소개팅 한 얘기를 할 때도 별다른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얘기하던 친구가 그분과 만난 얘기는 감정이 고조되어 평소보다 한 톤이 올라갔고, 잘 웃지 않는 내 친구가 계속 웃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설레는 표정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고, 10년 가까이 없던 기쁨과 열정이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에게 남은 삶이란 인공지능 로봇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며 혼자 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차도 필요 없었는데 연인이 생기니 차도 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직 생각도 있긴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다던 친구가 사귀기 시작하면서 바로 그분과 가까운 회사로 원서를 내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은 좀 더 만나봐야 한다. 만나면서 성격적인 면이나 자기와 크게 부딪히는 면이 있지는 않은지, 같이 살았을 때 문제가 되는 점은 없는지 봐야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것을 지켜봤을 때 서로 인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뀌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한쪽만의 감정이 아니라 양쪽 모두 마음에 드는 일이 쉽지 않음도 잘 알고,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만나게 되는 것도, 서로 크게 걸리는 것이 없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연애를 하는데 왜 내가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내 친구가 좋은 인연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의 연애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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