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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Jan 09. 2024

예민함에 대하여


나는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릴 때는 그저 성격이 좋고 착한 줄로만 알았고, 남을 배려하거나 이해심이 넓은 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물론 남이 봤을 때 성격이 좋고,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근원에는 나의 예민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요즘은 예민함이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책이나 매체에서 많이 언급된다. 예민한 사람에게 긍정적인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예민함의 장점을 잘 살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업무를 할 때도 남들보다 섬세하고 완벽하게 잘하기 때문에 앞서 갈 수 있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특출함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언급된다.     


일견 맞는 이야기다. 예민한 사람들은 남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아차리고 반응을 보일 수 있고, 일이 잘못되었거나 조짐이 안 좋은 것도 빨리 발견하여 대처를 할 수 있다. 남들이 봤을 때 머리가 좋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으며, 센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겉으로 장점만 봤을 때의 이야기다. 예민한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이 되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민함과 관련된 그 사람의 장점이 30% 정도를 구성하고 있다면 나머지 70%는 본인의 예민함 때문에 단점이 더 많다. (이 비율은 예민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극도로 예민한 사람은 10%의 장점 외에 대부분 90%의 시간을 본인의 예민함 때문에 괴로워하며 보낸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심리까지 신경을 쓰게 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예견하여 불안해야 하고, 둔한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것까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2배 이상으로 많아진다.     


만약 이것이 병적인 것이 되면 불안 장애나 우울 장애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많고, 일부 예술가들의 경우 양극성 장애나 인격 장애, 조현병 등으로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예민함을 넘어 뇌의 신경 세포나 신경전달물질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미쳤다고 생각했던 케이스들이다.)     


이처럼 예민함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민함의 정도나 분야에 따라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지느냐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아서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돌거나, 실수를 한 어떤 일에 사로잡혀서 다른 일을 못할 정도가 된다든지,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잠을 못 자고, 소화가 안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우울하게 되는 경우,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고 잦은 퇴사와 휴직으로 제대로 된 일을 못하는 경우 등이다.     


예민함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예민함은 병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바꾸기가 어렵다. 마치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성격이 형성이 되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예민함도 잘 바뀌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항우울제, 항불안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으로 증상을 억누르거나 약 기운 때문에 덜 예민해질 수는 있겠지만 나의 그것은 항상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고, 병이 심해지거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슬며시 기어 나오게 된다.(술을 먹어도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서 덜 예민해지기 때문에 술을 자주 먹게 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대처 방안을 말하자면 ‘먹고 자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예민함이 심해지므로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나의 기본적인 예민함이 50%라고 한다면 잠을 잘 못 잤을 때 그것이 70%까지 올라갈 수 있고, 잠도 못 잤는데 식사도 제대로 못하거나 소화가 안 되면 90%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만약 내가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하는데 낮에 햇볕을 보면서 운동도 하고 체력도 좋아지면 50%였던 나의 예민함이 30% 정도로 컨트롤되기도 한다.(예민함이 30% 정도로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몸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예민함을 발휘할 수 있는 일에는 그전보다 더 좋은 예민함을 보일 수 있다.)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예민함 그대로 일생을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수백억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그중에는 예민한 사람도 있었고 병적인 사람도 있었고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들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내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지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나는 예민함 때문에 괴롭지만 그전에 다들 그렇게 살았는데 나만 못 살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민함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된다. 살다 보면 예민함 때문에 지나치게 힘들 때도 있을 것이고, 일적인 성취를 이룰 때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삶의 방향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 또한 인생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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